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제이 Nov 09. 2021

정리



55日






결산에 이어 연말인 11월에 하는 루틴에 대한 기록이다. 두 번째 루틴은 정리. 이전 집을 철거하고 새로 짓는 과정에 제일 기진맥진했던 것이 묵은 짐을 털어내는 일이었다. 몇 개월에 걸쳐 정리하고도 며칠을 앓아누웠다. 앞으로는 미루지 말고 매년 조금씩 정리하며 살기로 작심했다. 웰다잉을 위한 데스 클리닝을 미리미리 습관화시킨다고 할까. 



10월부터는 택배로 오는 큰 박스를 버리지 않고 모아둔다. 택배박스로도 부족하면 동네에 장을 보러 나갈 때 마트에 쌓아둔 것 중에 적절한 것을 하나씩 들고 온다. 정리하는 부분은 옷, 아이의 장난감, 책이다. 



아이와 어른의 옷 정리는 따져볼 부분이 다르다. 아이의 옷은 사이즈로 결정된다. 해당 계절에 딱 맞았던 옷은 긴 겨울을 나고 나면 내년 봄에 맞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내의는 쓰레기통으로, 너무 자주 입어 해진 옷은 각각 마을 입구의 의류수거함으로 보낸다. 값이 좀 나가거나, 몇 번 입지 못하고 작아진 옷들은 박스로 들어간다. 장애인 일터로 유명한 굿윌스토어로 보내줄 것들이다. 



이에 비해 어른의 옷 정리는 시간이 조금 걸린다. 사이즈가 문제가 아니고, 자주 입지 않은 옷들을 앞으로도 입지 않을지 다시 꺼내 입을지 판단을 해야 한다. 여기서 살만 빠지면, 혹은 유행이 다시 돌아올지도.. 와 같은 거의 실현 불가능한 가정들을 물리치는데 시간이 특히 오래 걸린다. 옷을 골라내고 나면 중고마켓에 팔 수 있는 것들과 위에 쓴 기부 매장으로 보낼 것들을 분류도 해야 한다. 매년 하는 일인데도 일이 빨라지지 않는다. 



올해는 여기에 더해 침구까지 정리할 예정이다. 아이가 어릴 적에 깔 고쓰던 요와 패드들이 아직도 장롱 구석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종종 사은품으로 받고 쓰지 않는 극세사 담요들까지 모아서 유기견 센터에 겨울나기용으로 보내줄 것이다. 



장난감 정리는 아이와의 타협의 시간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마음이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아이들은 어제 묻고 오늘 물으면 답이 달라질 수 있다. 며칠간 놀지 않는 장난감을 눈여겨보고 있다가 팔거나 누구에게 주어도 되겠냐고 서너 번 반복해서 물어본다. 첫 번째 대답부터 대답이 시큰둥하면 실패 가능성이 높지만 팔아서 새로운 것을 사고 싶은 게 있는지, 너무 수준이 안 맞는 아가 것이라고 말하면서 설득을 하다 보면 자연히 치우는 것에 순응하기도 한다. 장난감은 거의 중고로 구매를 하기 때문에 팔 때도 부담이 없고 정말로 다시 갖고 싶어 하면 아빠가 구해줄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아이가 알고 있다. 해가 거듭되니 이 작업은 슬슬 노련해지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책 정리. 내게는 제일 어려운 정리이다. 집을 지을 때 붙박이로 만들어둔 책장의 규모를 넘지 않게 책을 소유하기로 결심했는데 아이가 크면서 책이 늘어나니 본의 아니게 아이 책과 내 책이 자리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좋아하는 책은 여러 번 읽는 편이라 이미 읽은 책이라고 치울 수가 없다. 결국은 내 책을 치워야 한다. 원래 책을 깨끗이 보는 편이라 알라딘에 되팔거나 국군장병들에게 책을 보내는 곳에 보내곤 했었는데, 읽는 방식을 바꿔서 줄을 긋고 여백에 메모까지 하다 보니 처리가 어려워졌다. 올해는 많이 정리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렇게 정리를 위해서 또 한 번의 난장이다. 당분간 집안 곳곳에 봉투와 박스가 너저분하게 늘어져있는 거만 잘 참으면 진짜 연말이다. 힘내자.



 

         

작가의 이전글 결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