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日
아이 유치원 확진자 이슈로 예정보다 하루 늦게 가족들이 모였다. 가족이라 봤자 아이까지 다섯. 만 나이로는 한 번이 더 남았지만 어찌 되었든 삼십 대의 마지막 생일을 하루 앞두고 나보다 부모님이 더 들떠계셨다. 거리두기 제한이 풀렸으니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부모님이 이런저런 외식 메뉴를 말씀하셨지만 나는 마당에서 고기 구워 먹으며 불멍이나 하면 좋겠다고 했다. 집만큼 마음 편하고 기분 좋은 자리가 없다. 마스크 쓰고 이야기 나눌 필요도 없고, 오래 앉아있어도 뭐라 할 사람 없고… 무엇보다 시원한 공기 쐬며 보다 맑은 정신으로 가족들과 도란도란 저녁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딸을 위해 부모님은 정성으로 미역국, 잡채와 각종 반찬들을 만들어오셨다. 미역국은 정작 엄마가 드셔야 하는 건데, 나는 여전히 엄마가 끓이신 미역국을 먹는 철부지다. 그래도 그게 싫지 않다. 아니 좋다. 미역과 소고기가 담뿍 들어간 엄마의 미역국. 엄마가 오래오래 내 미역국을 끓여주면 좋겠다.
저녁 6시. 남편은 마당에서 토치로 화로에 불을 피우기 시작했고, 아빠는 그 옆에 짙은 회색 라운지체어에 앉아 아이와 휴대폰으로 사진 찍기에 바쁘다. 엄마는 아직 다 낫지 않은 발목으로 부엌에 서서 식은 잡채를 다시 볶는다. 모든 장면들이 영화처럼 천천히 흘러간다. 눈에 담아둬야지. 가슴에 깊게 새겨놔야지.
식사를 마치고 불판을 들어내니 벌겋게 달아오른 숯 사이에 불꽃이 일렁인다. 아직 불은 한창이지만 안에 모아두었던 솔방울들은 그새 다 타고 솔향도 바람이 싣어가버렸다. 그래도 아쉽지 않다. 불은 사람들을 모여들게 한다. 사람들의 숨은 가까이서 느낄 수 있게, 그러나 말은 되도록 적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안정감을 느끼면서도 어색하지 않게 한다. 여럿이 모여있지만 자연스럽게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하는 불멍의 매력. 모처럼의 외식도 포기하고 이런 시간을 허락해준 가족들에게 감사했다. 나는 이런 시간이 필요했다. 어떤 생일 선물 보다도.
부모님이 집으로 돌아가시고, 남편과 아이가 잠자러 들어가자 나는 다시 마당으로 나왔다. 상현과 보름달 중간의 애매한 달 아래에서 부모님 댁으로 새벽 꽃배달을 주문하고 부지깽이로 화로의 숯을 휘젓는다. 보는 이가 없어도 부모님께 마음을 전하는 일이 쑥스러워서 그렇다. 그렇더라도 올해는 내 존재의 근원, 두 분께 작게나마 마음을 전하고 싶다.
세상에 나오는 것부터 두 분이 할 수 있는 만큼의 모든 것들을 제게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디 이 불처럼 은은하게, 따뜻하게 곁에 함께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