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日
유쾌한 모임에서도 조금은 무거운 역할을 맡던 사람이었다. 여대생 때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 나도 여자이면서 취한 친구들을 택시에 태워 보내고, 그도 안될 친구는 같이 타고 가서 집 안에 뉘워주고서야 귀가를 했다. 도움을 요청하기보다는 어떻게든 먼저 나서서 일을 맡고, 짊어지고 가던 사람이었다. 남을 위해서는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지만, 나를 위해서는 오해가 생길까 봐 흔한 이야기도 쉽사리 하지 못하는 모순덩어리의 사람. 그러나 아주 친한 사이가 아닌 이상은 그런 모습은 눈치채지 못했고 보통은 단단해 보이는 외면만을 보고 나를 믿어주었다. 남들이 보기에 나는 좀처럼 흐트러지지 않는 사람이면서 친절해도 대하기 어려운 사람이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남들이 내게 갖는 이미지가 내 아이덴티티인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내면에 소리를 기울이기보다 남의 잣대를 신경 쓰고 살았다.
감당할 수 있는 영역 이상을 의욕 있게 시작했다가 안간힘을 써야 유지되는 관계 속에서 괴로워하기를 반복했다. 그들이 믿은 만큼 힘이 났지만, 그들의 무관심만큼 나는 작아졌다. 외로움 속에서 평판의 올가미를 스스로 동여 메고 앉은 나를 변화시켜야 했다. 진정한 변화는 내면의 변화겠지만, 변화의 시작은 분명 보이는 것들부터 시도해야 했다.
100일 100장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들어간 모임에 나를 부러 드러내지 않기로 했다. 진짜인 줄 알았던 나의 모습을 던져버리기로 했다. 도드라지지 않는다는 것은 가끔 조바심을 유발했지만, 마치 금단증상 같은 것으로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진실로 표현하고 싶은 만큼만 표현하고, 수줍으면 수줍은 대로, 좋거나 싫은 것들에 대해 솔직해지기로 했다. 글쓰기가 그렇게 만들어주기도 했다. 솔직하지 않으면 하루 만에 하나의 글을 완성할 수가 없었다. 하루 솔직하면 다음날 더 솔직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 간의 호흡보다 더 천천히 사람들에게 다가가기로 했다. 글을 통해 친하다는 친구들보다 더 내면의 깊은 이야기를 공유하는 동기들에게 나도 진짜 나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진실한 친구들에게 억지 의도를 내어 관계를 맺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가로수 길을 드라이브하는 것처럼, ‘나’라는 차를 천천히 내 페이스대로 몰며 한 사람 한 사람 시간을 두고 보는 일이 무척 즐거웠다. 글을 쓰다 보니 굳이 더 드러낼 것도, 숨길 것도 없었다. 글 대로 나를 봐주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글쓰기 85일 차, 내 생일이다. 사실 그리 기대하지 않았다. 속도가 너무 느려서 아직 사람들에게 다가갈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새벽부터 디링 디링. 동기들뿐만 아니라 조용히 지켜보던 분들, 처음 만나는 분들까지도 생일을 축하하는 메시지와 마음들을 종일 보내왔다. 때로 의심했지만 내 속도에 맞춰 나대로 걸어왔더니, 그 길 위에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나 혼자 달려가지 않아도 되는 거구나. 갖은 체 하지 않아도 너무 힘주지 않아도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되어있구나 하는 깨달음이 스스로에게 준 생일선물이었다. 글쓰기가, 글로 만난 인연들이 나를 참 많이도 변화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