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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이 Nov 16. 2021

경고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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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날보다 분주하던 날이었다. 갑자기 날씨가 추워진 탓에 얇은 옷을 여러 겹 입히다 보니 아이가 짜증을 냈다. 겨우 달래서 옷을 입히고 아이를 먼저 등원시키기 위해 차문을 열었다. 요가 수련 시작까지 20분이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차에 시동을 걸자 요란한 경고음이 들려왔다. 안전벨트를 안 멜 때 알려주는 소리보다 몇 도 이상 높은음들이 귀를 찔러댔다.



계기판에 빨간 경고등이 들어왔다. 기계를 사면 매뉴얼은 믿고 거르는 타입인데 저 경고등 모양만은 기억하고 있다. 스무 살 수능을 마치고 면허를 딴 이후에 아빠가 처음으로 차 연수를 시켜주시면서 알려주신 모양이었다. 예사로 넘기면 안 되는 경고등 중에 하나라고 기억하라고. 냉각수 경고등.



아빠 말대로 그냥 넘기면 안 될 것처럼 경고음은 멈추지 않고 울어댔다. 시동을 몇 번 다시 걸자, 소리가 멈추어서 그대로 출발을 했다. 차를 모는 동안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짜내느라고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아빠가 거진 20년 전에 예사로 넘기지 말라셨는데,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20년 동안 배워두지 않았다. 이틀 후에 서비스센터를 예약해놔서 그전에 따로 센터를 가기는 싫었고, 남편은 출장을 가서 밤샘 촬영 후 자고 있으니 이런 걸로 깨우기도 그렇고, 어떻게든 내가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가 수련까지 마치고 주차장에 세워둔 차에 잠시 앉았다. 계기판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수많은 심벌들이 새겨져 있다. 한눈에 문제를 파악할 수 있게 정교하게 나열되어 있지만 내가 아는 모양이라곤 고작 한 두 개. 기름만 넣고 밟으면 나가는 자동차라 너무 무심했다.



검색을 해서 냉각수 체크를 하는 법을 찾아 본넷을 열려니, 도무지 레버가 어딨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핸들 주변에 당길 수 있는 것들은 하나씩 당겨보고 나서야 문짝 옆에 숨겨져 있던 레버를 찾을 수 있었다. 떨꺽-열리는 소리가 났는데 이번에는 본넷이 들어 올려지지 않는다. 힘으로 몇 번 해보고 나서야 그 아래 열리는 버튼이 하나 더 있다는 걸 알았다. 열고나서는 더 가관이다. 냉각수 뚜껑은 도대체가 오래된 딸기잼병만큼 열리지 않고 용량을 체크하는 F/L 표시는 절대 보이지 않는다. 와-내가 매일 몰고 다니는 차를 내가 이렇게나 모른다니, 기가 찼다. 나는 이 차를 7년을 몰았다. 우리는 10만 킬로를 함께 달렸다. 그런데 냉각수 경고등에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니 허참, 무기력했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알지 못하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다.



냉각수 통 속을 들여다봤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안보이더니 한참만에 F/L 눈금선이 양각으로 새겨진 게 보인다. 금속선 두 개가 통에 들어있는 액체에 가까스로 발을 담그고 있었다. 생각을 좀 해보니 이 금속선이 전류로 액체가 있는지 체크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시동을 걸면서 금속선이 흔들리면 양이 부족하다고 인식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신경을 쓰고 들여다보니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던 본넷 안에 담긴 것들이 하나씩 분리되어 보이기 시작한다. 완전히 바닥은 아닌 걸로 봐서 이틀 후 서비스센터에 갈 때까지는 버틸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어 그대로 본넷을 닫고 시동을 걸었다.  다행히 경고음이 울리지 않는다. 시간만 오래 함께 한다고 알아지는 것이 아니다.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아야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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