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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이 Nov 17. 2021

너라서 도전



63日






“그건 아닌 거 같은데?”라고 서로 단박에 말할 수 있는 막역한 사이. 스무 해 동안 지근에서 희로애락을 겪은 사이. 우리는 친구다. 친구는 함께 공부했던 디자인의 상업, 대중성의 울타리를 벗어나 순수예술을 하고 있기에 나는 그녀의 용기에 존경심을 갖고 있다.



얼마 전 친구가 나에게 전시 기획에 관심이 있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사실 나의 커리어는 큰 흐름에서 모두 기획에 해당하는 일들이었다. 세상의 모든 것은 기획(디자인)된다라는 생각을 가졌지만 전시 기획만큼은 행동을 못하고 마음에만 품었던 게으른 꿈이었다. 친구는 창작 지원 공모에 기획자로 함께 해줄 수 있냐고 제안했다. 순수예술 전공자도 아니고, 해당 분야의 기획 경력이 있는 게 아니지만 그 점에서 신선한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일반적인 제품 기획에서는 소비자 이해에 더 포커스를 맞추지만 작가들과의 작업에서는 생산자인 작가에 대한 깊은 이해가 기획의 핵심이다. 이 부분에서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나는 누구보다 친구의 작품을 이해한다고 믿는다. 이왕 도전을 한다면 이번이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머릿속이 온통 전시 주제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올랐다. 나는 발상 초기의 폭발적인 사고의 확장을 못 견디게 좋아한다. 세상의 모든 가능성을 다 담을 수 있을 것 같은 활기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니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친구도 함께하기에 오히려 사고는 더욱 자유롭다. 비판의 뒤에 숨은 의도에 대해 의심할 필요가 없고 다시 상대를 설득하거나, 내가 수정하면 되기 때문이다.



오늘은 지원사업 공모를 주최하는 재단의 아트센터를 방문했다. 갤러리의 규모를 체크하기 위해서다. 무척 현대적인 건축물에 갤러리는 크다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웅장한 느낌이었다. 넓고 높은 공간의 규모에 압도당해서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양가의 감정이 들었다. 혹여 당선이 되더라도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좌절감과 정말 해내고 싶다는 간절함. 이 지원 사업은 나이 제한이 있어서 친구에게 지원의 기회는 올해로 끝이다. 나보다 간절할 작가를 위해서 나는 후자의 감정에 용기를 실어줘야 한다.



갤러리의 심상을 단단히 각인하고   있다는 마음만 갈무리해서, 도전을 시작한다. 결과가 담보되지 않는 도전이지만 ‘도전이라는 단어의 힘만으로도 기획 노트를 채워가는 손가락이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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