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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이 Jul 05. 2022

[경추 르포] 내 경추 인생 반추

새벽 2시 반, 누우면 더 심해지는 통증 때문에 섰다 앉았다 하며 쓰기 시작했다. 퇴고처럼 몰두 본능을 자극하는 작업을 할 수 없어서 매우 날 것의 ‘경추 르포’가 될 예정이다.




퍼즐 상자를 촤-뒤집으면 그림이 보이는 퍼즐과 뒤집혀 보이지 않는 퍼즐이 섞여있다. 기분상으로는 늘 보이지 않는 쪽이 많은 것 같다. 내 경추 인생의 퍼즐들도 그랬다. 뚜렷이 기억나는 퍼즐이 몇 조각 없다. 무심했던 과거를 마주하려면 현재의 손을 부지런히 놀려야 한다. 그림이 보이지 않는 조각을 뒤집고 조각들이 모여 재구성될 때마다 완성작이 썩 좋지는 않다.


지금이야 승모근이 불끈 솟아서 그렇지, 사실 나는 목이 긴 편이었다.(그런 것으로 기억한다.) 비행기나 기차, 버스의 복도 칸에 앉아서 잠을 자다가 내 어깨를 내 침으로 적셔본 적이 있는지? 나는 어떤 교통수단이든 의자에 앉아 머리가 닿자마자 잠이 드는 신공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보다 더 진귀한 능력은 기대어 잘 어깨를 자급자족하는 능력이다. 귀가 어깨에 닿을 정도로 목을 꺾고 자서 자다깨면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시선 하나쯤은 꼭 마주치곤 했다. 수학여행을 갈 때는 내가 자는 사이에 사진을 찍어두는 친구도 있었다. 눈을 뜨면 0도에 수렴하는 뻣뻣한 목의 각도를 어떻게 90도까지 끌어올릴지 고민하면서도 무심하기도 하지, 목베개에 단 한 번도 관심을 보이진 못했다.(않았다.)


학창 시절, 책이라면 백과사전부터 만화책까지 가리지 않고 많이 보는 편이었다. 내 독서량이야 유수의 학자들이나 작가들에 비하면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격이니까, 책 좀 본다고 다 일자목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자세가 잘못됐다. 돌이켜보면 코어가 항상 무너져 있었다. 주변에 공부법, 독서법은 만연했지만 누구도 공부, 독서 자세를 강조해준 이가 없었다. 학교에서 교련(옛날 사람입니다.) 시간에서라도 자세 연습을 하면 정말 좋았을 텐데…


인간에게는 기본적으로 몰두 본능이 있다고 한다. 책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책 속으로 들어가 버릴 듯 고개는 앞으로 쏟아지고, 목 뒤에 묵직한 무게를 느끼면서도 멈추지 않는다. 보통의 사람 머리 무게는 5 킬로그램 정도 하는데 고개를 숙이기 시작하면 중력에 의해 20킬로 이상이 가중된다고 한다. 내 느낌은 생수 몇 병 이래도, 실제로는 10병 정도의 힘이 가해지는 것이다. 가는 목뼈가 수십 년 동안 물동이를 지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유구무언이다… 사극에서 허리와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눈을 살짝 내리깔며 책을 보는 선비의 자세가 FM임을 깨닫는다. 옛사람들의 지혜란.


코어가 진작에 무너져 있으니 소파에서 tv 보는 자세도 좋을 리가 없다. 정확히  이하까지는 눕히고 목만 세우는 전형적인 포테이토 카우치 자세. 또는 한쪽으로 누워서 베개나 손으로 얼굴을 받치고 보는 자세.  근래 찾고 보니 디스크야, 빨리 탈출해라, 하고 문고리를 대신 돌려주는 최악의 자세들이다. 이다음은 컴퓨터. 초등학교 5학년  얼리어답터이자 컴퓨터 긱이었던 아빠가 집에 PC 놔주셨다. 띠띠띠띠-삐이-하며 전화선으로 연결되던 천리안과 하이텔을 넘나들면서 의자에 앉아있는 시간은 배가 되었다. 자세야 .. 원래도 새던 바가지인데 여기서도  샐라고..


승모근은 고2-3 때부터 서서히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고3 때, 어깨가 너무 아파서 울면서 정형외과에 갔던 기억의 퍼즐이 맞춰졌다. 우리가 주름을 제거하는 미용 목적으로 맞는 보톡스가 원래는 정형외과에서 근육을 이완시키기 위해 개발된 거란 걸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19살 나이에 승모근을 보톡스 주사로 조샀던 사람은 흔하지는 않을 거다. 이때부터는 어깨와 견갑골이 묵직하고 불편한 느낌은 상시 있었다. 취직을 하고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있고 나서는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도 꽤 많았던 것 같다.


고통을 통해 살아있다는 걸 느낀다.라는 말은 나를 점점 더 안일하고 무감각한 사람으로 만들어갔다. 이 정도쯤이야 현대인이라면 기본이지 싶었다. 여기서 더하기야 하겠어 하는 대책 없는 낙관주의도 한몫했다. 낙관을 넘어서 요행을 바란 수준이다. 세상은 원인과 결과, 자극과 반응이 이치 아니던가. 나는 이 단순한 진리를 무슨 배포로 무시하며 살았는지 모르겠다. ‘지금 받는 나의 현재는 과거의 얼굴이며 현재에 짓고 있는 건 미래의 씨앗이다.’라고 말한 마조도일 선사 말처럼, 쌓이고 쌓인 과거의 습은 오늘로 드러나는 결과.


그럼 좀더 나은 미래를 위해

현재의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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