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외할아버지가 발아한 완두 씨앗을 심은 지 오래지 않은 거 같은데, 장맛비가 몇 번 내리고 나니 콩깍지 겉면이 마르기 시작한다. 안이 통통하게 차오른 걸 보니 수확의 기쁨을 맛볼 때가 왔다.
6개의 씨앗은 고귀한 생장의 순환을 거쳐,
다시 씨앗의 형태로 돌아왔다.
밑천 생각이 안 날 만큼 풍요롭게.
알알이 보고 있자니, 어찌나 윤이 나고, 생생해 보이는지..
둥근 접시에 소복이 쌓인 완두로 밥을 지었다.
통통한 콩알이 기특하고 감사하다.
사실, 발아한 씨앗을 심어준 후에는 해준 게 별로 없다.
그저 묵묵히 기다리니 싹이 땅을 뚫고 올라오고,
눈 깜짝할 새에 덩굴이 되어
땅을 타고 옆으로 늘어지기 시작하면
나는 지주대를 꽂아 덩굴이 지주대를 따라
올라가기 쉽게 케이블 타이로 살짝 묶어준 것뿐.
이후로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뜨거운 볕이 내리쬐는 더위를 감내해준 건
오롯이 완두 녀석들의 몫이었다.
흰쌀밥에 콕콕 박힌 올리브색 완두콩이
신기해서 세어보는 아이에게
문득 엄마의 역할이라는 게
완두콩을 키울 때와 같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심리적 지지대만 탄탄히 세워주고 나면,
어떤 방향으로든 아이가 선택하여 삶의 길을 정하도록 하는 자유와 그 안에서 최적의 경험을 즐길 수 있게 하는 기회를 선사하는 것.
그 경험의 길 위에 비바람에 웅크리고, 땡볕에 늘어져도 믿고 기다려주며 결국 얻어낼 통통하고 윤기 나는 결실은 오롯이 아이의 몫으로 돌리는 것.
작은 자연에서 지혜를 엿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