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연히 인친님의 블로그 글을 읽게 되었다. 주택에 살고 있다는 공통점과 더불어 그분이 느끼고 있는 우울한 감정에 대해 공감을 많이 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본원적인 멜랑꼴리가 있고, 창의성의 동력이 된다고 생각은 하지만 머리로는 감정들을 통제하기가 어려울 때가 종종 있다. 명상과 요가로도 채울 수 없는, 감정의 표출 도구가 필요했던 이유이다.
쓰는 행위에 그다지 간절하지 않았던 때,
친구가 새벽 루틴에 모닝 페이지라는 걸 추가하면 어떠냐고 권유했다. 특별할 것 없는 이름. 눈 뜨자마자 3페이지를 의식의 흐름대로, 반드시 손으로 써 내려가야 한다고 했다. 손으로 글을 쓴 지가 오래라 내키지 않았지만
이미 3년을 써온 친구가 추천하는 거니까 이유가 있겠지 하는 어설픈 믿음으로, 마침 떨어지고 있던 새벽시간 효율도 높여보고자 시작해봤을 뿐이었다.
처음 1주일은 페이지에 1/3이 ‘뭘 쓰라는 거지.’ ‘나는 기윤재에 대해서 쓰기도 벅찬데. 아-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3페이지 언제 채워.’라는 말들이었다.
모닝 페이지의 규칙이 얼마 동안은 쓴 글을 읽어보지 말라는 것인데, 그만한 이유가 있어 보였다. 내가 써놓고도 내 머릿속이 이렇게 정신없었나 싶을 정도라 낯부끄러워움에 읽기가 어려워서.
그래도 그냥 매일 했다. 왜 하는지, 한다고 뭐가 달라지는지 의문이 나면 글로 쓰고 말았다. 30일은 해봐야 3년 한 친구에게 역정이라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울함, 무력감, 서운함, 아쉬움, 막막함..
나와 타인을 향한 복합적인 감정들을 최대한 떠오르는 대로 새벽시간에 기록해나갔다.
30일이 되던 날, 친구에게 아무 말하지 않고 지나갔다.
문득 글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부정적인 경향이 많이 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비교했던 대상들에 대한 상념들도 홀쭉해져 마음이라는 방이 한결 여유로워졌다. 감정의 찌꺼기들이 페이지에 기록됨과 동시에 해리되었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말처럼 모닝 페이지는 새로운 계획과 희망을 담기 시작했고, 1년 여 넘게 쓰지 않던 기윤재에 대한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인생책인 <몰입>(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저)에서 글쓰기라는 지적 활동의 역할에 대한 내용을 발췌했다.
이 책은 읽을 때마다 와닿는 부분이 다른 걸 보면 아는 만큼 보인다, 아니 경험하는 만큼 읽힌다.
“많은 작가들이 정서장애를 겪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 발표되었고, 그에 따른 많은 논평이 이루어졌다. 그들이 작가가 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들의 의식이 엔트로피에 과도하게 둘러싸여 있어서, 글을 쓴다는 것이 감정의 혼란 속에서 어느 정도 질서를 잡아주는 치료 역할을 해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신이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언어의 세계를 창조해내서 골치 아픈 현실의 존재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는 것만이 작가들이 플로우를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될 수도 있다.”
작가는 아니지만 자의식이 강하고 주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 나에게도 글쓰기는 의식의 허례를 내려놓고 내면의 질서를 다지는 동적인 명상이며, 스스로 쓰는 면류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