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성의 울타리가 알려준 것

by 이제이


수렵, 채집만 하고 살던 인간들이 농경을 시작하고 가축을 기르기 시작하면서 전보다 편해졌을까, 아님 고단해졌을까? 분명한 것은 ‘소유의 경계’라는 개념이 생기면서 정복에 대한 욕망과 침범에 대한 불안, 지킴에 대한 간절함이라는 감정들이 생겨나면서 삶이 복잡해졌을 것이라는 점이다. 불필요했던 감정들이 발현하고 그것들이 충돌하면서 수많은 역사들이 쓰여왔다. 우리는 빼앗고, 뺏기는 자들의 역사를 통해 건축과 예술을 벼리고, 경제를 발전시켜왔다.



내 소유의 땅이 생기자 선인들이 그래 왔던 것처럼 안정감과 불안함이라는 모순의 감정이 고개를 든다. 사람은 행복하다 느끼면 있는 그대로를 즐기기보다 진짜인지 모든 것을 의심한다. 내가 이렇게 좋아도 되나, 이런 게 정말 행복인가. 이 행복은 얼마나 갈까. 행복감에 도취되어 칠렐레 팔렐레 지내다가 불쑥 다가온 불행이 발이라도 걸면 속수무책으로 넘어질 텐데... 하며 일말의 경계심을 보초로 세운다. 그러다가 정말 작은 사건이라도 생기면 그럼 그렇지, 하고 다음에 찾아오는 행복에도 긴장을 쉬이 풀 수 없다. 생존을 우선시하는 우리의 원시적인 뇌가 그렇게 사고하게끔 셋팅을 해두었다. 아마도 유전자에 숨겨둔 조상들의 고약한 선물 이리라.



불쑥 맴도는 불안감에 비해 기윤재의 경계를 드러내는 담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집은 새로 지었지만 구옥의 담을 아직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데, 철거하면서 허물어 놓은 부분을 기링이 맡아서 벽돌 조적을 하기로 해놓고 두 해가 넘도록 미완성이다. 여름은 더워서, 겨울은 추워서 봄, 가을은 바빠서 재촉하기도 미안하다. 안 그래도 손길을 기다리는 곳이 많아 일을 쉬는 날이라도 집으로 출근을 하는 꼴인데.



담이 미완성이니까 대문이 있을 리도 만무하다.

부모님도 입주 후 1년 정도는 빨리 하라고 채근하시더니 이제 말이 없으시다. 대문이 없으니 안에 주차하기가 편한 것도 완성을 미루고 있는 은근한 이유라는 걸 알아차리셨나. 경계를 따라 몇 줄씩은 벽돌을 쌓아두었기에 사람들이 충분히 담의 존재를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나만의 착각인가 보다. 보통날은 지내는데 지장이 없고 대문 좀 없으면 어떨까 싶어서 느긋한 편인데, 가끔 마음 불편한 일이 생긴다.






외출을 하고 들어왔는데 쓰지 않은 주차장의 수도 부근의 바닥이 젖어있어서 이상하다 생각했다. 다음 날 아침, 창 밖을 내다보며 식사를 하고 있는데 큰 양동이를 들고 자주 해본 듯 주차장으로 입장하는 공사 인부 아저씨가 보인다. 수도꼭지를 이미 돌려 물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내가 나가서 물으니 그제야 별 대수롭지 않게 “물 좀 쓸게요!” 한다. 그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마음을 맞닥뜨리니 오히려 내가 어찌해얄지 모르겠다. 지금 물 한 양동이의 값어치 대해 왈가왈부하려는 게 아닌데. 절차를 따지려는 내가 너무 야박한 건가, 순간 판단이 흐려진다. 별 말 안 하는 주인까지 만났겠다, 아저씨는 마음이 더욱 편해졌는지 공사를 마칠 때까지 물 받으러 오는 빈도가 줄어들지 않는다.



마을 공사를 마치고 도로 포장을 하던 날. 초인종이 울려 기링이 나가보니 얼마 전 이사 온 옆집 아주머니가 서있다. 문 앞 길에 도로포장을 해놔서 우리집 마당을 가로질러 나왔단다. 그러니까 마당에 들어가면 안되냐고 묻는 게 아니고 이미 마당을 가로질러 나왔다고 말하는, 이를테면 사후통보다. 이따 집에 들어오는 길에도 이렇게 지나가겠다며 묻길래 기링이 그러라고 하고 들어왔다고 말해주었다. 그녀와는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한 사이이다. 지나가며 창문으로 집안을 들여다봤을까. 별거 없는 일상이지만 동의 없이 노출되었다는 점을 곱씹을수록 불쾌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뒷마당 입구에 벨이 없으니 들어오기 전에 물을 수 없었다는 건 알겠는데, 나갈 때는 급할 수도 있지만, 돌아올 때도 꼭 이렇게 지나가야 하나? 아니지, 벨을 눌러서 이야기를 이렇게 나눌 시간이 있는 정도면 돌아서 나가면 되지 않나..? 그리고 돌아올 때 벨을 눌러서 묻고 지나가면 되지…’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있고, 말 그대로 조금 돌아서 가야 할 뿐이라는 사실을 차치하고라도 언제인지도 모를 그녀의 귀갓길에 다시금 우리는 무방비한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불편한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길을 내어주고 안 내어주고의 문제도, 그녀가 낯선 사람으로서 위협의 존재인지에 대한 문제도 아니다. 코로나 이전까지 마을을 지나며 집을 좀 둘러봐도 되냐고 묻는 분들을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다. 다만 내 안마당에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는 점이 문제이다.



나의 감정과 상대의 행동의 심리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드는 성격을 익히 알면서도 기링은 신경 쓰지 말라고 한다. 결국 나는 저녁 늦게 CCTV를 확인하고서야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사람들은 남의 경계에 대한 존중보다 자기의 편의가 먼저인가 보다. 하고 생각하면서. 그 아주머니 집 대문은 늘 굳건히 닫혀있다.



명상으로 만나온 공감과 연민과 자애심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실전에서는 오리무중이 된 평정심은 이쯤 되면 경계를 공고히 하지 않은 내 잘못인가 싶은 우울감으로 번져간다. 나는 결코 쉽게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이라서 화통하게 ‘네, 그러세요!’라고 시원하게 말할 수 없는 건데, 그런 스스로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이런 게 사회적 가스라이팅 아닌가...



그래도 위 두 에피소드는 며칠 지나면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모래 같은 이야기들이지만 다음 이야기는 꽤 오랫동안 마음 속에 부유하는 진흙 같은 이야기이다.



그날도 다이닝 테이블에 앉아 일을 하고 있는데, 노트북 너머 창밖으로 주차장에 하얀 SUV 차가 미끄러지듯 들어온다. 서비스센터 직원이 방문할 일이 있었나 하며 생각해보는 찰나, 두 남자가 차에서 내리더니 손날을 이마에 대고 지하실 창문에 바짝 붙어 안쪽을 살펴본다. 이내 차 트렁크 문을 열고 몇 번 왔다 갔다 하며 무언가를 차로 옮기더니 문을 닫고 주차장을 유유히 빠져나간다.



‘내가 지금 뭘 본거지?’



심장이 쿵쾅쿵쾅. 1분 여 남짓 시간 동안 벌어진 일을 파악하기 위해 휴대폰으로 cctv를 확인하는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들이 싣고 간 건 청고 벽돌이었다. 건물 외벽에 쓰고 남은 것들을 조경에 쓰려고 담 안쪽에 가지런히 쌓아뒀었다. 눈앞에서 도둑을 맞다니…! 담에 대한 에피소드를 넘어서 범죄의 카테고리로 넘어가는 순간, 가슴속에서 펑!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간 담아두었던 감정들이 일순간 폭발해버린 것처럼.



이게 참 뭐라고..



cctv가 비춰준 하얀 suv 차량의 뒷모습을 특정하고, 번호판 숫자를 외우자마자 문을 박차고 나와 마을 안쪽으로 들어간 차를 향해 뛰었다. 차가 금세 자취를 감췄다. 주차되어있는 몇몇 비슷한 차가 혼란스럽게 한다.



잡아야 하는데!



나의 게으름과 합리화로 인해 생겨난 일로 귀결될 것만 같아서, 그 간의 모든 일이 결국은 빌미를 제공한 나의 잘못이 될 것만 같아서, 놓칠 수 없다. 그래, 신고, 경찰, 112! 눈으로는 차를 쫓으면서 경찰에게 상황과 주소 등을 설명하기는 어려울 듯해서 기링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빠르게 설명하고, 일단 경찰에 신고해달라고 했다. 동네 사람이라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 버린 게 아니라면, 마을의 입구는 하나라서 우리집을 지나야만 마을을 빠져나갈 수 있다. 오랜만에 뛰어서 숨은 가쁘고, 찾지 못할 수도 있다는 긴장감으로 인한 교감신경 반응인지 귀까지 뜨거워진다.



경찰을 불렀다는 기링의 문자를 확인하고 고개를 드는데 시선이 닿은 골목에서 그 하얀 자동차가 빠져나온다! 마을을 구경하는지 보통의 차와는 다르게 느리게 움직인다. 그러나 200여 미터 되는 거리를 내가 뛰어 잡기에는 무리인 자동차의 속도. 뒤따라가면 차가 멈추지 않고 가버릴 수 있으니 왔던 길을 되돌아 차의 앞을 막아야 한다. 다행히 차가 가려는 길과 내가 뒤돌아 뛸 길은 V로 한 지점에서 만나게 되어있다. 판단이 서는 순간, 달렸다. 학창 시절 체력장에서 100미터 달리기도 썩 잘하지 못하는 편이었는데, 반드시 차를 막아선다.라는 일념으로 이 악물고 뛰었다. 추격전을 벌이는 경찰들 심정이 이럴까. 분노의 질주로 길 끝에 도착했고, 차는 간발의 차로 내 팔에 가로막혔다.


끼익-



정말 화가 나는 건, 가쁜 숨을 몰아쉬는 나와는 달리 창문을 내리고 시시덕 웃고 있던 그 남자들의 표정이었다. 내 물건을 집어갔다는 사실보다 그 뻔뻔함에 더 화가 치밀었다.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그러나 태연자약하게 무슨 일이세요? 하는 그 말투.



“저희 집에 들어갔다 나오셨죠?”


남자 둘이 말없이 또 웃는다. 기분 나쁘게.


“아 네~ 집이 너무 예뻐서 잠시 보고 갔어요.”


벽돌도 집어갔지요.라는 말은 쏙 빼네.


“저희 집에서 벽돌 싣어서 나가셨잖아요! CCTV로 다 확인했어요.”


살짝 놀라는 눈치였지만, 역시나 실실 웃는다.


“아, 주인분이 안 계신 거 같아서 금세 보고 갖다 드리려고 했어요. 딱 세 장 가져갔는데요.”


아니 이게 무슨 개똥 같은 소리야.


“주인이 엄연히 집에 있는데 무슨 소리예요. 그리고 한 장이든 세 장이든 남의 물건을 묻지도 않고 가져가면 절도인 거 모르세요?! 경찰에 신고해서 오고 있으니까 차 이쪽으로 세우고 내리세요.”



그제야 웃음기가 조금 가신 남자 둘은 순순히 차를 대고 내렸다. 운전자는 태세를 바꾸고 연신 죄송하다고 하고, 조수석에 있던 남자는 일을 주도했는지 구구절절하다. 서울에서 집 짓는 건축업자라며 벽돌집과 곧 미팅이 있는데, 우리집 벽돌이 너무 이뻐서 미팅 때 샘플로 보여주고 싶어서 집어갔다고 했다. 그럼 사진을 찍으면 되지 않냐고 했더니, 성북동 같은 동네에서는 벽돌 사진을 찍으면 신고를 하길래 그랬다고 한다. 이 동네는 그냥 시골 마을인데...집에 차가 있는데 왜 주인을 찾아보지도 않고 가져갔냐고 하니까 자기가 올라가서 현관을 두들겨 부르면 주인분이 더 불편해할까 봐 그랬단다. 이쯤 되면 자기 합리화의 끝판왕이다. 마지막에 남자가 거듭하던 ‘어찌 되었든 미안합니다. 화가 나셨다면 죄송합니다’라는 사과의 기본도 모르는 남자의 화법에서 일말의 진심도 느껴지지 않는다.



경찰은 역시 노련했다. 이런 류의 사람에 대한 경험치로 다시 한번 핑계 한 보따리 풀어내려는 남자의 말을 바로 차단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신분증 내놓으시라며.



신원조회 상 문제는 없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묻는 경찰에게 잘 이야기해서 돌려보내 달라고 했다. 잔뜩 으름장을 놓는 경찰들에게도 끝까지 너스레를 떠는 남자를 보니 학습된 대응인 것 같다. 그 체화된 천연덕스러움을 보며 행동은 나빴지만 열심히 일해보려다 일어난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문득 측은한 마음이 든다. 아이고 이 칠푼이 팔푼이야...화를 끝까지 냈어야 했는데, 따로 모아두었던 부서진 벽돌 몇 개를 집어주었다. 이 정도만 가져가도 벽돌은 충분히 수배할 수 있을 거라고. 그때까지 그렇게 어둡지도 않았지만, 남자의 표정이 더 밝아진다. 이 파벽돌을 들고 벽돌집 사장과 오늘 일을 무용담으로 웃으며 나누겠지.



떠올리면 진창같은 기억으로 남을 사건의 끝은, 갑작스런 측은지심이 남자들에게 파벽돌을 챙겨주면서 흐지부지 해졌다. 어쩌면 혹시라도 뒤에 이어질 신고에 대한 보복 등을 방지할 나름의 방어적 행동이었는지도 모른다. 마지막에 모질지 못한 습관이 탈일 때도 많지만, 상대방의 숨구멍 하나는 열어주는 게 나중에 있을지도 모르는 후회를 막아주기도 한다.



느슨한 울타리는 마치 깨진 유리창 같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무질서로 인식되고, 도덕적 해이를 불러일으킨다. 안정감보다 불안감의 기울기가 더 클 때, 소유를 보장받는 권리에 목마를 것이 아니라 경계를 지킬 의무를 수행하는 게 더 현명한 것 같다. 가을이 오면 더이상 미루지 않고 담을 정리해야지. 느슨했던 기윤재의 담에 벽돌 한 장 한 장을 쌓으면서 나의 마음의 울타리도 더욱 견고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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