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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이 Sep 05. 2021

식습관 메이크 오버

몰래 먹기 끊었어요.



13日






영국 channel 4의 예전 프로그램 중에  <secret eaters>가 있다. 건강한 음식을 먹는다고 자부함에도 살이 찌는 사람들 집에 관찰 카메라를 달고 원인을 찾아서 10주 간 식습관을 개선해주는 포맷이다. secret eating은 무엇을, 얼마나 먹는지 숨기려는 의도를 가지고 음식을 먹는, 쉽게 말해 몰래 먹는 습관이다. 이 식습관 장애는 거식, 폭식증보다는 대중적이지만 죄책감, 수치심, 혼란 등의 감정과 연결되어있고, 자신이 먹는 양을 과대 혹은 과소평가함으로써 체중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고 한다. 출연자들이 부지불식 간에 탄산음료를 2,3 리터씩 마시고, 감자칩을 노래방 새우깡 봉지만큼 먹었다. 인간의 위장은 한계가 없어 보였다.



때로는 정의되지 않고 모호하게 머릿속을 부유하는 개념이 낫다. 언어의 꼬리표를 달아 인식이 되면,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문제의 행동을 하고 있는 자기모순에 빠질 때가 있다. 코로나 전파력이 막강해지면서 집순이에게도 스트레스가 생겼다. Secret eating(몰래 먹기)를 아는 나는 아이에게 먹지 말라고 하던 군것질을 아이가 잠든 후에 꺼내먹기 시작했다. 다음날 일어나서 후회는 하지만 체중계에 변화가 없는 날이 며칠 반복되자, 살이 찌지 않는 패치라도 붙이고 있는 양 무절제해지기 시작했다. 밤마다 소울푸드들이 손짓했다. 에너지 보존 법칙이 나만 비껴 날 리가 없으니 먹고 움직이지 않으면 체중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 이 불편한 진실을 피하기를 몇 개월 지속했다. 출산을 하고서도 유지해왔던 몸무게가 조금씩 늘어나더니, 저울의 바늘이 마지노선에서 꼴깍하면 오른쪽으로 넘어갈 참이었다.



여름의 어느 날, 씨 없는 수박 몇 덩이를 먹고 두둑해진 자기 배를 퉁퉁 치던 아이가 눈을 흘기며 웃는다.



“흐흐흣, 엄마 배도 뚠뚠해.”



귓바퀴를 돌아 고막을 치며 들어오는 ‘뚠뚠’. 말로 때리는 게 이런 거구나. 아이들은 솔직하다. 듣는 사람 속도 모르고. 아이가 자기 배와 친히 ‘뚠뚠한’ 꼬리표를 달아준 내 배를 번갈아서 퉁퉁 울린다. 둔탁한 소리가 나는 게 참 별로다. 남편이 얘기했다면 뿔이 났을 텐데 아이의 말은 밉지가 않다. 악의 없이 순수한 말이 거울처럼 나를 비춘다. 현실 자각 타임. 이번에는 알면서도 ‘뚠뚠한’ 배를 그대로 둘 수가 없다. 진작에 혼자 끊을 수도 있었을 텐데 이런 변화의 계기를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늦은 밤 새우깡 한 봉지의 행복을 놓기에는 좀 질척거릴 것도 같은데, 곰 세 마리 노래를 부르는 아이가 ‘엄마 곰은 날씬해.’ 부분에서 주춤거리게 하면 안 되니까.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났다.

그 사이 효소, 비타민 C, 유산균을 눈에 잘 보이게 놔두고 오며 가며 간식처럼 먹었다. 밤이 되면 마음이 약해질 나에게 편지도 붙여뒀다. 손을 댈 간식 선반 위에.



‘문 열지 마라. 입이 심심하면 효소를 먹어, 달달한 유산균도 괜찮아. 이제 뒤돌아.’



여전히 나는 아이가 잠들면 팬트리로 숨어든다. 그리고 다시 돌아서서 나온다. 식습관 메이크 오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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