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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이 Sep 06. 2021

벌레 대환장 파티 1

또 나만 보여.



청소에 이어, 이 자리를 빌려 고백한다. ‘주택은 벌레 많죠?’라는 질문에 낯빛 하나 안 변하고 ‘많긴 한데 뭐, 괜찮아요.’ 했던 거, 그거 아니다. 솔직히 안 괜찮을 때 있다. 내 대답에 질문자가 '주택은 역시 주택이네. 우리 집은 벌레 없는데.'라고 자신만만할 때 나는 속으로 말을 삼킨다. 


'네 눈에만 안 보이는 걸 걸.'



만물이 소생하는 봄, 그들도 깨어난다. 난방이 잘 되는 집이라면 월동이랄 것도 없다. 따뜻한 집에서 겨울을 함께 보낸 거다. 그들은 숨어서 세를 불리다가 장마 즈음부터 존재감을 드러낸다.



주택에 오래 살았기에 ‘보통’은 벌레와 마주쳐도 놀라지 않는다. 옛날에는 따뜻한 부잣집에서만 보여서 돈벌레라고 불리던 그리마. 약을 뿌리면 자기 다리도 끊고 도망가는 혐오스러움을 보여주지만 끝까지 쫓아가서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하다.



노래기. 지난겨울이 상대적으로 따뜻했고, 습한 날씨가 지속됐던 여름 날씨의 여파로 한동안 출몰했다. 지네랑 흡사해 보이지만, 좀 더 동글동글 윤기가 나는 생김새이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금세 청소기를 돌린 마루 한가운데에 나타나서 기어갈 때가 있다. 냄새는 나지만 ‘기어간다고 용쓰네..’하고 잡고, 컴컴한 화장실 문 뒤에 똬리를 틀고 죽어있는 걸 봐도 ‘아이고, 남의 집에 잘 못 들어와서 굶어 죽었네.’하고 치울 수 있다. 축축한 부식물을 먹고살아서 일정 기간만 버티면 집 안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쥐며느리. 원래 그냥 다 있는 거다. 어릴 적에 나뭇가지로 건드려서 공으로 만들고 그랬던 기억이 다들 있을 텐데. 하수구 트랩을 설치하면 확실히 줄어든다.



영화 ‘300’의 크세르 크세스 황제처럼 ‘나는 관대하다.’를 외치며 자비를 베풀 수 있는 벌레들도 있다. 벌과 개미. 이런 애들은 사람에게 무해하다는 판단 하에 밖으로 나가도록 유인을 하거나, 종이컵에 담아서 책받침 등으로 입구를 막아준 다음, 밖에서 풀어준다.



한동안 주택에 최적화된 나의 벌레 대응방법에 스스로를 칭찬하고 살았다. 주택 살면서 벌레 괜찮냐는 질문에도 씩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너무 작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작아도 너무 작은.



인간의 적당한 시력은 신의 가호다. 시력이 더 좋았다면 그에 걸맞은 강한 심장을 주셔야 했을 것이다. 작은 것들이 보인 날부터 기링에게 ‘혹시 책장에서 엄청 작은 벌레 못 봤어?’ ‘진짜 본 적 없어?’ 물어도 기링은 매번 ‘아니.’라고 답했다. 개인적으로 0.8 이상의 시력은 사치라고 생각했다. 기링이 딱 그 정도의 시력을 가지고 있는데, ‘어머, 나 이제 눈에 주름 생겼나 봐.’ 하면 ‘예전이랑 똑같은데?’라고 답정너의 대답도 거부감 없이 잘하게 만드는 그의 시력에 매우 만족하고 살았다. 다만 내 시력은 자연의 흐름을 거슬러 렌즈 삽입 시술을 한 덕에 1.8이 되었지만 심장은 높아진 시력만큼 진실을 마주하는 데 강하지 못했다. 게다가 움직이는 물체에 반사적으로 눈이 가는 타고난 동체시력도 한몫했다.



고작 볼펜으로 찍은 ‘점’만 한 크기의 그 벌레를 마주치면 머리가 쭈뼛 섰다. 자려고 눈을 감으면 점만 한 게 점, 점, 점, 늘어서 벽 안에서 보이지 않는 거대한 국가를 이루는 그림이 그려졌다. 기링의 시력이 좋아져서 내가 본 것을 함께 보고 공감해주길 바랐다. 내 눈에만 보이는 이 벌레 대환장 파티 속에서 너무 외로웠다.



검색조차 어찌 해얄지 몰라서 늦은 밤에 ‘집벌레’, ‘작은 벌레’, ‘엄청 작은 벌레’ 등을 검색어로 넣어 찾아보았다. 괜스레 몸이 가려워서 글을 읽으면서 애꿎은 팔다리를 벅벅 긁었다. 우연히 그 작은 것들을 ‘미세해충’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중 하나인 ‘먼지다듬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딴 네이버 카페에도 가입했다. 크기가 작아서 초점도 안 맞는 흐릿한 내 벌레 사진들을 업로드하고 카페의 미세해충 감별사들의 판독을 기다렸다. 초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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