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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이 Sep 07. 2021

벌레 대환장 파티 2.

도전과 응전



‘후, 먼지 다듬이가 맞네요.’



일반인 감별사들은 댓글을 달며 진심으로 나를 위로했다. 일단 눈에 보이면 박멸은 어렵다고들 했다. 나처럼 집안의 유일한 목격자가 되었기에 원하지 않아도 감별사가 된 사람들이 영원히 작은 벌레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고 단정 지었다.



먼지다듬이. 지식백과를 열었다. 적나라한 확대 사진과 그림을 정면으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오래된 책을 읽을 때 재채기를 유발했던 ‘책벌레’라고 불리던 녀석들이 바로 다듬이벌레라는 정식 명칭을 가진 곤충이었다.



무성생식.

잡식성.

특히 나무껍질 아래 서식.

분포지역은 전 세계.

야외에서 발견된 보고는 한국에 아직 없음.



그러니까 전 세계 어디에나 모든 실내에는 그들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네. 목조주택은 더 좋아하겠군. 학교에서 배우던 곤충류라 하기에는 머리, 가슴, 배라는 곤충 구별을 위한 3요소 조차 파악이 어려운 작은 녀석이 내 마음속에도 기어 다니게 될 거라고 확신했다.



퇴치 수기를 읽으며 정보를 수집했다. 모든 신경이 박멸에 집중되었다.



창문이야 늘 열어놓는 거니까 환기는 잘하고 있고, 이부자리, 아이 옷가지를 모두 들어내서 빨래를 한다고 세탁기와 건조기를 혹사시켰다. 기계 열이 여름의 열기를 더했다. 몇 날 며칠 밤낮으로 기계를 돌려서 팬트리 근처만 가도 후끈했다. 내추럴 인테리어를 담당하던 해초 바구니, 라탄 수납함, 드라이플라워를 아낌없이 아궁이에 넣고 태웠다. 오래된 책들과 노트도 일부 정리했다. 손때 묻은 시집 몇 권 만 손이 벌벌 떨려서 소독기에 살균을 돌리고 다시 꽂았다.



제일 우려되는 곳은 아이 방이었다. 기윤재는 집 전체에 마이너스 몰딩이라는 안쪽으로 오목하게 들어간 몰딩을 사용하기에 벽과 벽이 만나는 부분에 미세한 틈이 있다. 미세해충에 알맞은 넓이였다. 먼지다듬이는 수직이동을 주로 한다기에 아이방 벽면 몰딩을 빙 둘러 양면테이프를 붙였다. 벽면에서 바닥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양면테이프에 꽁꽁 묶이리라. 살충제는 아이에게 영향이 갈까 봐 천연성분이 들었다 해도 양껏 뿌리지는 못했다.



블로그 후기에 혹해서 초음파 퇴치기를 방 개수만큼 준비했다. 초음파는 사람 귀에 안 들리다던데, 내 귀에는 지직지직 거리는 전파음이 들려서 자는 내내 신경이 쓰였다. 작은 벌레들이 저 소리를 싫어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지? 의심하며 뒤척였다. 나무가 벌레를 쫓기 위해 자연적으로 발산한다는 피톤치드가 가득 담긴 편백수 원액과 자동분사기마저 구입했다. 원액을 연기처럼 작은 입자로 분사하니 실내 습도가 높아졌다. 기링이 촉촉해서 벌레들이 더 좋아하는 거 아니냐고 놀렸다. 장난할 기분이 아닌데, 지금. 모아이 석상같이 근엄한 표정으로 기링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택배 아저씨의 방문이 매일같이 이어지고, 지하실 한편에 빈 박스가 일주일 내내 쌓여 있었다.



민속박물관에서 유물 관리법에 대한 전시를 보는데, 역시나 미세해충은 시대를 막론하고 존재했던 것 같다. 드럼통 같이 생긴 캡슐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유물의 보존을 위해 해충들을 제거하는 진공 박스라고 쓰여있었다.



“오빠, 방을 통째로 진공 상태로 만드는 기술을 개발하면 떼돈을 벌지 않을까? 벌레들이 싹 다 없어질 텐데.”



기링은 벽에 기공들이 있어서 밀폐가 우선 불가능하다며 매우 이과적인 논리로 나의 발상을 압살 했다. 이번에는 긴장감을 낮추려고 장난을 쳐본 건데, 기링은 너무 진지했다. 나는 또다시 모아이 석상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절에서 지내면서 빈대에게 다리를 뜯길 때도 이렇게까지 괴롭지 않았는데,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세상에 관대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지나치게 예민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그 밤, 천정을 멀뚱멀뚱 올려다보는데 나는 점점 유별난 사람이 되고 있는 건가 하고 생각했다.








“오빠, 나 요즘 벌레 찾는다고 눈이 너무 피곤해. 걔네들이 집을 점령하는 상상도 해.”



쓰는 나도 질리는데, 듣는 그는 오죽할까. 비극적 시나리오까지 쓰는 불안 장애를 보이자 기링이 해충방제업체를 부르자고 제안했다. 스트레스 그만 받고 자본주의 케어를 하라며. 파란 조끼를 입고 온 아주머니는 여유만만했다. 휴대폰에 저장된 각종 벌레들을 보여주며 이런 미세해충은 어느 집에나 다 있는 거라며 안심시키려 들었다. 자기 휴대폰에 벌레 사진들을 담고 다녀야 하는 아주머니도 힘드시겠다는 생각이 들뿐,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미세해충은 자신들도 박멸을 확답할 수 없다며 은근히 선 긋기를 했다. 해충퇴치로 돈을 버는 업체도 해봤자,라고 운을 떼니까 끝에 다다랐다는 예감이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기링은 나를 알고 있었다. 모든 일을 곪을 대로 곪게 만들어서 고름이 터져야 압력이 빠지고 통증이 사라지는 상처로 대한다는 걸. 혼자 온몸과 마음을 휩쓸어 앓을 대로 앓아서 기진맥진이 되어야만 생각을 손에서 놓을 수 있음을.



“네 마음이 편할 것 같으면 케어 한 번 받아보겠다고 해. 아니, 한 번 말고 정기로 받는다고 해. 돈 많이 들어도 괜찮아. 벌면 되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드디어 고름이 터졌다.



“오빠, 왜 이렇게 쉬운 게 하나 없지?”



기윤재에 들어와 어느 것 하나 쉽게 지나가는 법이 없다. 이 작은 우주에 적응을 해서 나태해지려는 찰나 외부 세계의 침입을 받고, 나는 방어를 위해 치열하게 배우며 답을 찾는다. 집은 도전과 응전의 공간이다.



업체 아주머니께 서비스는 내년 여름에 다시 생각해보겠다고 통보했다. 공교롭게도 끝내지도 못한 투쟁 속에 계절이 변하고 있었다. 심리적 임계점이 오기 직전, 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벌레 대환장파티가 신기루로 사라져 갔다. 작은 것들을 마주치는 빈도가 줄었다. 이런 수순으로 갈 건데 찬란한 여름 동안 무얼 한 건지 민망하기도 하고, 허탈했다. 나 자신을 괴롭힐 만큼 괴롭히고 나니 계절이 바뀌어서 생각지 못한 국면을 맞이했다.



나는 외계인이 있다고 믿는다. 드넓은 우주에서 지구에만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있고 외계인은 절대 없다고 믿는다면, 존재의 오만이라고 생각한다. 우주가 그렇게 비효율적일 리가 없다. 같은 논리라면 벌레도 똑같다.  소우주라고 부르는 집에 사람도 사는데 작은 벌레 하나도 살면  된다고 믿는  모순이다. 흙땅 위에 세워진 주택에 오직 사람만 있다면  공간이 우리의 생존에 유익한 환경은 아닐 거다. 나는 외계인을 믿으면서도  공간의 작은 침입자가 여전히 불편하다. 신념을 현실에 적용시키는 데에는 시간이 많이 필요할  같다. 그래도 겨울은 오고, 그들의 동면이 시작되면 나도  계절쯤은 안식을 취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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