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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이 Sep 13. 2021

떡볶이 예찬

침 고임 주의



19日






“자기는 일주일 내내 먹어도 안 질리는 음식이 있어?”


“그럼~떡볶이!”



남편은 치킨을 말했고, 나는 떡볶이를 외쳤다.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을 음식,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음식. 궂은 일을 겪었어도, 모진 말을 들었어도, 냄새만 맡으면 후진 기분을 날아가 버리게 하는 음식, 소울푸드. 빨간 떡볶이. 기름 떡볶이, 즉석 떡볶이. 로제 떡볶이. 궁중 떡볶이... 쌀떡도 좋고, 밀떡도 좋고 말해 뭐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다는 책의 제목처럼 누군가에게는 죽음으로 귀결되는 우울감 속에서도 삶의 욕구를 느낄 수 있게 하는 떡볶이. 영혼을 구하는 진정한 소울푸드다. 칼칼한 빨간 양념이 묻은 찰진 가래떡에 우아하게 칼질을 하며 옛 기억을 더듬는다. 떡볶이집에서 나는 은근히 많은 것을 배웠던 것 같다.



홍대 떡볶이 골목. 이십여 년 전에 ‘걷고 싶은 거리’로 변하면서 머릿속에만 남게 된 그 골목. 하굣길 10분 여를 걸어 두 사람이 간신히 스쳐 지나갈 쪽 길을 뚫고 나오면 곧장 좌회전을 한다. 집으로 가려면 직진을 해야 하는데 9살 어린이는 과감하게 떡볶이 골목으로 방향을 잡는다. 주머니 속 짤랑짤랑 동전 소리가 경쾌하다. 골목 첫 번 째 가게는 충남 슈퍼, 그 옆은 안쪽으로 깊이 들어가는 길쭉한 서점, 그 옆부터 줄줄이 떡볶이 가게가 자리한다. 나는 왼쪽에서 두 번째 가게에서 떡볶이를 사 먹곤 했다. 사람을 잘 기억하는 편이 아닌데도 가게 주인아저씨의 얼굴과 가래떡처럼 두툼한 손가락, 아저씨가 숨기려고 노력했지만 숨길 수 없던 경상도 억양까지 정확히 기억한다. 코 묻는 동전이나 내미는 아이에게 필요 이상의 친절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이라고 무시하지 않았던 아저씨. 나는 어른 손님과 다름없는 대우를 받아 흡족했다. 그 기분을 느끼려고 그 집만 드나들었었는지도 모른다. 아저씨의 직업윤리에서 평등을 어렴풋이 배웠다.



떡볶이 접시 색깔은 누가 정했는지, 초록색 타원형 접시에 올려진 빨간 소스가 강렬한 대비를 이루면서 침샘이 폭발한다. 아저씨가 떡이 든 주걱을 접시에 턱- 내려놓으면 나는 이미 두 눈으로 떡을 씹고 있다. 행복은 동전 몇 닢에 사는 어슷 썬 대 가래떡 두어 줄에 놓여있었다. 나는 소확행 선지자였다.



이대 떡볶이 골목. ‘삐삐네’를 자주 갔는데, 역시 수년 전에 길이 넓어지고, 건물이 들어서서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중학교 때는 아직 동대문 상권이 발달하기 전이라 서울의 젊은이들은 옷을 사러 이대로 몰려오곤 했다. 그들도 잘 모르는 중심 도로의 지류. 언제부터 자리 잡았는지 모르는 남루한 가게들이 모여있는 이 골목 떡볶이 집들의 독특한 점은 메뉴에 잡채가 있다는 것이다. ‘아줌마 코팅해주세요!’라는 말을 알면 이대에서 떡볶이 좀 먹어본 사람이다. 아줌마가 잡채를 떡볶이 국물로 코팅해서 갖다 주신다. 어묵 국물 한 사발 퍼와서 옆에 놓고 먹으면 후룩후룩 잘도 넘어간다. 중학교 때 떡볶이 집에서 깨달은 것은 우정이다. 코팅한 잡채가 먹고 싶지 않은 날에도 친구를 위해 주문해준다. ‘라면 먹을래요?’라는 불후의 영화 대사가 이성을 향한 은밀한 메타포였다면, ‘떡볶이 먹을래?’는 동성 친구들 간의 현대판 도원결의 제안이다.



고등학교는 서울 중심가의 비즈니스 지구에 덜렁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근처에 아기자기한 떡볶이집이 없었다. 동아리 선배들에게 기합을 받은 날은, 지하철  정거장은 가야 하는 기찻길  떡볶이집까지 걸어가며 친구들과 회포를 풀었다. 쫀득한 밀떡 떡볶이에 속이  야끼만두   비벼먹고 나면, 내일  선배들 얼굴을  용기가 생겼다. 해가 지날수록 세상이 말하는 어른과 아이 사이의 애매한 정체성을 지닌 우리는 거친 폭풍을 맞은 배처럼 흔들렸다.  번의 시험으로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결정될 것만 같은 불안함을 담은 눈들은 마주치지 못하고 접시만 내려볼 때가 있었다. 우리는 떡볶이 접시에 불만을 담고 불만을 먹어삼켰다. 고등학교 3학년에게 떡볶이집은 유일하게 허락된 쉼터였다. 나이를 막론하고 숨통 트일  하나만 있어도 희망은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에게 희망을 주던 가건물은 얼마 전에 이전을 했다고 한다.



두꺼운 가래떡 두 줄을 먹으니까 속이 든든해졌다. 추억이 심리적 허기도 채워주었다. 비록 떡볶이집들은 모두 사라졌지만.



떡볶이로 뉴스를 검색하니 떡볶이 칼로리를 정리한 기사가 나온다. 칼로리가 높으니 체중 증가에 주의하라는 기사다. 칼로리는 음식의 단위 무게가 발생하는 열을 계량해서 나타낸다. 떡볶이는 단지 우리의 몸에 열량을 공급하는 게 아니라 마음의 온도를 후끈하게 올려주는 양식인데, 진짜 몰라도 너무 모르는 기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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