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日
방구석에 앉아 차를 마시다 보면 얼굴들이 떠오른다. 해결을 하기에는 내가 너무 무기력해서 외면하고 싶은 표정을 띤 얼굴들이.
한 잔의 차는 경이롭다. 작은 찻잎에는 땅이 응축되어 있고 물은 그것을 맛과 향으로 환원한다. 그래서 차맛의 8할은 물이 결정한다. 깨끗한 물이 없으면 찻잎만은 아무 짝에 쓸모가 없다. 세상의 70% 이상이 물로 이루어져 있지만 우리가 마실 수 있는 물은 빙하수를 빼면 1%도 되지 않는다. 제한 없이 마음껏 차를 우려 마실 수 있는 우리 집, 우리나라. 축복받은 땅에 태어난 덕에 그 1%의 소중함을 굳이 떠올릴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차는 사람을 깨우는 힘이 있다. 차를 가까이할수록 연민이 생긴다. 차를 마시며 느끼는 이 아름다운 경험을 나눌 수 없는 환경에 사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물마저도 구하기 어려운 그들에게 느끼는 미안함, 책임감.
물뿐만이 아니다. 찻잎에는 최소한의 교육. 생계에 필요한 최소한의 임금. 청결한 생활환경을 누릴 수 없는 노동자들의 눈물이 들어있다. 먼 곳에서 우리를 위해, 아니 생존을 위해 찻잎을 따는 그들에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해야만 할까. ‘누구나 차를 마시는 사회’라는 꿈은 생존이라는 비장함 앞에서 겸손해진다. 나는 유토피아를 꿈꾸지만 그들에게는 이미 나의 일상이 유토피아이다.
사랑한다면 대상을 지키기 위해 뭐든 해야 한다.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다. 그 수많은 얼굴들에게 갖는 마음의 짐을 털어낼 수 있는 힘의 씨앗이 내 안에 있음을 인식한다. 아주 느리지만 하나씩 움을 틔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