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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이 Oct 02. 2021

비를 피한다는 것



37日






비 오는 아침, 장화를 신고 우산을 들고 마당으로 나왔다. 비를 맞고 행여 감기라도 걸릴까 아이에게는 하늘색 우비까지 입혔다. 물이 찬 곳이 없나 살필 요량이었는데 다실 앞 토분 받침에서 달팽이를 발견했다. 꼬물꼬물 물을 헤쳐 길을 가던 녀석이 아이의 목소리에 놀랐는지 멈춰 섰다.



”엄마! 달팽이! 근데 비 맞아서 어떡해.. 비 피해얄텐데.”

“달팽이는 비를 피하지 않아.”

“왜요?”

“달팽이는 비를 좋아하니까.”



아이는 고개를 갸웃했다. 우비, 장화, 우산까지 챙긴 아이에게  비를 좋아한다는 것은 비를 감상하는 것까지다. 달팽이에게 비를 ‘좋아하다’는 비에 ’흠뻑 젖는다’이다. 그래서 비를 피한다는 것은 비를 맞아야 사는 존재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다. 반대로 비를 맞으면 날개가 젖어 날지 못하는 존재에게는 비를 피하지 않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둘은 다른 언어를 가지고 있다.



아주 오래전, 다른 언어를 가진 사람을 사랑했다. 타지에서 느끼는 고독 속에 다름에 대한 동경으로 혼자 사랑을 시작했다. 비를 피해야 사는 잠자리와 비를 맞아야 사는 달팽이가 함께 하기 어려운 것처럼 우리는 어울릴 시간이 많지 않았다. 누군가는 희생을 해야 했다. 그는 밤을 좋아했고, 나는 한낮을 좋아했다. 우리는 구름이 보이지 않는 시간에 만났다. 사람들에게는 구름만큼 우리도 잘 보이지 않았다. 달팽이가 비를 피하는 것처럼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삶의 방식을 내게 입히며 지냈다. 역시나 제때 몸을 숨기지 못하면 햇빛에 말라죽는 달팽이처럼 나는 생기를 잃어갔다. 숨을 쉬기 어려웠던 날, 결국 나는 영영 숨어버렸다. 그의 언어로는 이해되지 않는 결말이었을 것이다. 내가 아이에게 알려준 것처럼 그에게 나의 언어를 알려주는 이가 없었을 테니까.



비는 여전한데 하늘이 서서히 밝아진다. 달팽이가 다시 꼬물꼬물 데크 끝으로 움직여간다. 구름 사이로 나올 해를 피하려고 데크 아래로 들어가려고 하나보다.  아래에는 너의 언어를 이해할 존재들이 있겠지. 다름은 인정하는 것이지 추종하는 것이 아니다. 비를 피하는 것을 이해할 , 햇빛에 제 몸 내놓고 말라가지 말아라.



이윽고 달팽이는 몸을 감추었고, 해가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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