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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이 Oct 04. 2021

세심한 두 남자

합평회 2.



39日






합평회 이야기를 좀 더 해야겠다.


기획자들은 세심하다. 그래서인지 책과강연의 대표와 부대표, 두 남자는 무척 세심했다. 이를테면 사무실과 단차가 있는 현관에서 고민할 사람들을 위해 문에 ‘신발은 신고 들어오세요.’라고 쓰인 종이를 붙여 놓는다거나, 합평회 안내문에 ‘화장실은 안쪽에 있습니다.’와 같은 문구를 써놓을 정도로 시시콜콜 세심했다. 공간의 주도자가 공간이 낯설지 않게 만드는 배려. 참 좋다.



사무실을 전체적으로 둘러싼 옅은 푸른색의 벽마저도 그냥 골라서 바른 색은 아닐 거야, 짐작한다. 푸른색은 신뢰를 주는 색이니까. 사무실의 유일한 내실. 대표님의 방은 바깥보다 어두운 벽에 책상 위에 강렬하게 빛을 뿜는 스탠드 하나가 놓여있다. 엄청 집중 잘되겠는데, 예상한다. 바깥 풍경에 영향을 받지 않게끔 내려진 블라인드들. 창문도 시계도 없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만드는 카지노 같은 걸. 디자인 전공자로서 나의 디자인 정의는 ‘자연을 제외한 모든 것은 디자인이다.’이다. 디자인은 기획과 유의어이다. 그래서 감히 모든 것은 기획된 것이라고 믿는다.



커피가 준비되어 있을 것 같아서 차를 우리는 티 보틀을 들고 갔다. 오는 길에 우린 차를 다 마셔버려서 차를 한 번 더 우릴 뜨거운 물을 찾았다. 눈에 보이는 건 커피 캡슐 머신뿐. 캡슐 없이 물만 나오도록 버튼을 눌렀지만 지난 캡슐의 흔적이 함께 흘러나왔다. 보틀에 담긴 물 색이 예사롭지 않은 걸 눈치챈 대표님과 부대표님이 번갈아서 필요한 걸 물었다. 섬세한 눈길은 사랑이다. 뻘쭘한 보틀이 갈 곳을 찾았다.



정수기는 사무실 안쪽에 있었다. 이번에는 온수 버튼을 눌러도 민망하게 띵-띵-소리만 날 뿐 물이 나오지 않았다. 조용히 하고 물을 내다오, 정수기야. 그때 다시 대표님이 나타났다. 기계가 주인을 알아보는지 온수가 쪼르르-나오기 시작한다. “뜨거운 물이 조금 천천히 나오죠?” 버튼 소리 때문인지 몰라도, 필요한 시점에 필요한 사람이 나타나는 건 우연 만은 아닌 것 같다.



티 보틀을 들고 내 이름이 놓인 자리에 앉았다. 각티슈들이 놓여있었다. 비염이 올 수 있는 가을에는 어느 자리에 가든 티슈를 챙겨간다. 깜빡하고 챙기지 못한 날에는 주변을 살펴 티슈의 위치를 파악해둔다. 부대표님이 오늘의 티슈는 낭독을 듣다가, 혹은 낭독을 하다가 일어날 눈물샘 폭발 사태를 대비해서 놓아두었다고 했다. 설마, 처음 만나는 사람들 앞에서 내가 운다고? 그럴 리가. 나중 얘기지만 우리 테이블에서 내가 제일 먼저 티슈를 뽑았다. 콧물 아니고 눈물 때문에.



작가들의 글 낭독이 이어지면서 집중력이 흐려지기는커녕 점점 더 몰입이 되었다. 고작 십 수명이 모인 자리이지만 낭독할 때는 마이크를 사용하도록 했다. 자기 글을 낭독할 때 마이크를 꼭 쥔 손에 긴장된 마음을 싣고 있는 것 같았다. 심리적 지팡이라고 할까. 마이크가 없었다면 원고를 한껏 추켜올려 얼굴을 가리고 읽었을 것이다. 이번 합평회는 줌과 병행해서 진행되었다. 낭독자가 다음 낭독자를 지목할 수 있게 하니 현장감이 떨어져서 소외감을 느낄지 모르는 줌에 있는 작가들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의도한 것은 의도한 대로, 거기에 의도하지 않은 것조차 좋은 방향으로 해석하는 긍정 회로를 돌렸다. 아, 과몰입인가.



낭독과 피드백을 마치고 기념사진까지 찍고 나니 멋지게 준비된 코스요리 먹은 기분이었다. 사용자의 경험을 디자인하는 것은 파인 다이닝의 코스요리를 구성하는 것과 같다. 앉는 의자의 쿠션감과 높이를 확인하고, 옷가지와 가방을  자리를 마련하고, 식기의 온도, 커트러리의 각도를 잰다. 먹는 속도보다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나오는 음식들. 잘라주는  좋은 것은 잘라서, 알려주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먹는 방법을   있게끔 하는 플레이팅. 오가는 대화에 방해되지 않도록  흐르듯이 부족함을 채워주는 서비스들.  모든  사용자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가능하다. 오늘의 코스요리는 짜임새가 섬세했다.



후식은 댓글 달기였다. 낭독을 위해 업로드해둔 동기들의 글에 댓글을 달기로 했다. 가감 없이 자신을 드러낸 작가들의 진심에 피드백을 남기며 더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17]. 내게도 댓글이 17개나 달려 있다. 돌돌 말은 종이를 펼치고 싶은 마음 꾹꾹 참았다가 내 방에 돌아와서야 혼자 만끽하는 수련회 롤링페이퍼처럼, 늦은 밤 다락방에 혼자 앉아 댓글을 읽고 또 읽었다. 이 감성마저 기획된 것일까. 두 남자의 세심함은 그렇게 이틀 넘도록 여운을 남기고 있었다. 나는 오늘도 되새김질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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