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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이 Oct 05. 2021

몽타주

합평회 3.



40日






동기 작가들의 글을 읽으며 그들의 몽타주를 그려왔다. 많이는 읽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읽을 때마다는 노력을 했다. 머릿속에서 얼굴을 그리고 머리칼을 얹고, 키나 옷차림을 그렸다. 몽타주는 비단 비주얼 이미지만이 아니다. 성격이나 심리상태를 상상해서 내면의 몽타주도 그렸다면 그 작가의 글을 어느 정도 읽어왔다는 뜻이다. 작가가 선별한 활자들은 선별자의 넓이와 깊이를 그릴 수 있게 한다.



23장의 몽타주가 머릿속에 쌓여 있었다. 어떤 것은 선명하고, 어떤 것은 흐릿하고 어떤 것은 완성도 하지 못했다. 선명한 순서대로 정리를 하다 보니, 꼭 고등학교 때 풀던 수학의 정석 책 같았다. 앞 쪽만 새카맣고 뒤로 갈수록 여백이 느껴지는. 게으른 완벽주의자는 글을 더 꼼꼼히 읽을 생각은 하지 않고 한 방을 노렸다. 그런 시기에 합평회가 열렸다.



흘끔흘끔 대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맹렬하게 모두를 관찰한다. 머릿속에 그려둔 몽타주를 대조하고 수정하기는 본능적인 일이다. 나의 일방적인 관찰은 놀이이기도 했지더듬이 역할을 했다. 외동으로 자라는 아이는 편이 없기 일쑤이니까. 뭐든 빠르게 파악하고 무엇보다 상황이든 관계이든 통제하려는 욕망이 컸다.  엉큼한 구석을 몰라보고 엄마는  “네가 호기심이 많아서 그래하고 좋게 말해주었다.



나는 낭독이 무척 기대가 되었다. 오디오북이나 팟캐스트와는 친하지 않아서 목소리에만 집중해서 그 사람을 듣는 것은 내게 익숙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40편의 글 중에서 고심해서 골랐을 원고에 목소리까지 입히면, 넓이와 깊이만 느껴지던 글이 살아서 춤을 출 텐데.



합평회에서 낭독될 원고들은 모두 프린트되어 크래프트 서류봉투에 넣어져 자리마다 한 부씩 놓여 있었다.

합평회 전날, 원래 제출했던 원고보다 짧은 원고로 다시 골라 보냈다. 혹시라도 긴 글에 듣는 이가 불편해할까 봐서다. 그러나 나는 몇몇 작가들이 긴 글을 낭독할 때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외려 고심해서 썼을 한 줄, 한 문단을 생략해서 읽어 내릴 때는 마음이 아팠다. 그런 분들의 글은 다시 한번 듣고 싶다. 주변을 지워내고 그녀와 글, 둘만 있는 것처럼 온전히 집중해서 글을 읽는 모습을 보고 싶다.



성문이라고 불릴 정도로 사람에게 제2의 지문으로 불리는 목소리. 지문 같은 목소리들을 2시간 반가량 들었다. 높거나 혹은 낮은 음색, 담담한 혹은 다소 고조된 어조, 명료한 혹은 부드러운 발음... 행간에서 느껴지는 지은이의 숨소리까지. 목소리는 가히 글, 모습에 더해 삼위일체가 되어 한 장 한 장의 입체 몽타주를 완성했다. 한 방이 적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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