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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이 Oct 06. 2021

마스크 너머의 삶



41日





아이는 나보다 마스크를 더 잘 챙긴다. 그러고 보니 아이의 5살 인생에서 1년 6개월, 3할이 넘는 시간 동안 마스크를 써왔다. 내게 휴대폰이 제2의 신체라면, 아이에게는 마스크가 그런 물건인 것 같다.


 

요즘 들어 모두가 마스크를 벗게 되는 날을 상상한다. 마스크는 사회적 합의의 상징이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하기로’ 결정한 것은 사회적 합의로만 다시 ‘안 하기로’ 결정할 수 있다. 물론 자기 방어, 타인 배려를 위한 나의 동의도 포함되어있다. 그러나 내 코와 입의 입장에서는 마스크가 외부의 세계와 숨을 맞대고 느낄 수 없게, 동의 없이 강제로 씌운 강아지 입마개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매년 이맘때쯤 겪는 비염이 오지 않는 것을 과연 기뻐만 하고 있으면 될까? 시간의 공백만큼 저하된 대항력으로 다음 가을을 버틸 수 있을까. 생각이 미치면 갑자기 소름이 돋는다. 합의를 통한 보호는 영역 안에서는 안전할지 몰라도 영역 밖에서의 안전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오래, 또 강도 높은 보호는 자립할 수 있는 힘을 저하시키기 때문이다.



마스크를 ' 하기로' 결정한 후의 혼란스러울 세상을 걱정한다. 비단 위생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과학적인 근거를   없지만 상관없다. 이런  귀납적 사고 만으로도 자명한 것이다. 보호만 받던 존재가 독립을 했을 , 어려움을 겪지 않는 경우는 없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경험한다. 따박따박 엄마가 주는 영양분을 전달하던 태반이 사라지고 알몸으로 세상에 나왔을  얼마나 참담했는지 우리의 무의식 속에 각인되어있다. 학교와 회사의 울타리를 넘는 일은 얼마나 두려운가. 유치산업들이 보호 속에 안주하다 글로벌 시대와 맞닥뜨렸을 때는? 스스로 면역체계를 갖지 못한 사회가 외부 정권에게 의지하던 소위 국가 운영 시스템을 이양받았을 , 혼란 속에서 괴로워하는  얼마 전에도 보지 않았던가.



제일 두려운 것은 보호막 안에 안주하며 최소의 자가 면역을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준비하려는 마음조차 갖지 않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마스크를 쓰는 동안, 세상은 개벽을 했다. 깨어있는데 그치면 안 된다. 어떻게 정신을 박고, '해야 할' 일을 찾아 살아내야 하는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마스크 너머의 삶을 준비해야 한다. 마스크를 벗을 때가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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