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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이 Oct 09. 2021

작은 기윤재

친구, 스승, 다시 나 같은.



‘작은 기윤재’는 작다. 우리집 ‘기윤재’ 옆에 달려있는 3.3평 남짓한 크기의 다실이다. 크기로 보나, 형태로 보기에 차를 마시는 소박한 공간이다. 그러나 이 작은 별채가 가진 의미는 소박하지 않다.



작은 기윤재는 타인과의 관계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을 만나는 장소이다. 이런 공간을 갖게 되길 소망하고 또 소망했다. 그랬더니 어느 날 그림 같은 현실이 눈앞에 나타났다. 3면은 벽으로 되어있지만 남은 한 면은 완전히 개방이 되어 안팎의 구별이 필요 없고, 바람이 고이지 않는 공간이다.



차를 우릴 물을 올리기 위해 손에서 휴대폰을 내려놓는다. 호박처럼 펑퍼짐한 유리 탕관의 물이 끓기를 기다리며 새소리에 귀 기울인다. 팔팔 끓은 찻물을 부어 차를 우려내는 동안 바람의 숨을 맡는다.



우린 찻물 안에 나를 녹여낸다. 이 차 한 잔과 함께 내면의 깊은 우주에 닿을 수도, 자연의 너른 마음에 안길 수도 있다. 홀로 앉아있지만 외롭지 않다. 자신에게 마음을 열면 수많은 ‘나’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 기윤재에서 차와 마주하는 시간은 최적의 경험이다. 외적인 조건에 압도되지 않고, 내적인 질서에 귀 기울일 수 있는 몰입의 시간이다. 질서 속에서 휴식하고 다시 올 것이 뻔한 무질서의 환경에 저항할 힘을 비축하도록 한다. 평범한 이의 질서는 유약하지만, 매일의 선택과 경험에 진지하다면 조금은 더 일관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또 한 번 자기에게 확신을 주는 시간이다.



때로는 친구 같고, 스승 같고, 다시 나 같은 이 소중한 공간을 마음과 시간을 들여 가꾸고 있다. 작은 다실이 나를, 또 내가 바라는 모습을 닮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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