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떨 땐 기쁘고, 어떨 땐 못 견디게 화가 난다.
어떨 땐 슬프고, 어떨 땐 족히 즐겁다.
산책 나온 강아지처럼 내 마음은 여기저기 감정의 냄새를 맡으며 주인보다 앞서 나가곤 한다. 가끔은 강아지에 메인 줄을 끌어당겨도 돌아오지 않는 통에 애를 먹곤 한다. 휩쓸려 내달리는 마음을 방목하고, 몸이라도 먼저 다실에 기별 없이 들어선다.
희로애락의 그 어떤 때에도 작은 기윤재를 채우는 모든 것들은 있어야 할 자리에 그대로 있다. 나만이 손댈 수 있는 공간. 먼지마저도 내가 손대지 않으면 사라지지 않는 곳. 완벽하게 나의 통제 아래 있는 곳이기에, 양지바른 땅 위에 자리하지만 기꺼이 나만 아는 은신처라고 할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집 안의 어느 한 자리라도 이렇게 만들 수 있었다. 작은 기윤재를 만들기 전에는 집안의 모든 곳이 나의 자리였다. 그러나 모두라는 건 때로 아무것도 아니다. 은밀한 기쁨과 자랑스럽지 못한 슬픔을 완벽하게 은폐되지 않은, 그 어디에나이면서 실은 어느 곳에도 없는 자리에서 겪어야했다. 그렇기에 나는 뜨뜻미지근하게 감정을 드러내고 또 얼렁뚱땅 가라앉혀야 했다.
비로소 여기, 나의 자리에서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는 일용품을 어루만진다. 다관, 호승, 숙우, 찻잔, 차시.. 손의 감각이 달아오를 때쯤, 발발거리며 돌아다니던 강아지가 슬몃 뒤를 돌아본다. 쫓아오던 주인이 제 아닌 것에 관심을 쏟고 있으니 꼬랑지가 시나브로 내려온다. 주인은 하던 대로 일용품을 다룬다. 한 자리에서 기다리던 그것들은, 강아지처럼 속 썩 일 일이 없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각자의 할 일을 수행하면서 이뤄가는 평정(平靜). 평안하고 고요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물 끓는 소리에 강아지는, 마음은 이윽고 주인의 발걸음에 맞추어 돌아온다.
찻물을 따르는 지금, 바로 여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