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제이 Oct 13. 2021

수수한 조연



숙우(熟盂). 익을 숙. 사발 우. 이 차도구는 물식힘 사발로도 불리운다. 뜨거운 물을 제일 먼저 품는 용사다. 같은 차나무 잎이라도 만듦새에 따라 선호하는 물의 온도가 다르다. 물만 부으면 어떻게든 우러나지만, 맛있게 우리려고 마음을 먹으면 까다롭기가 한이 없다. 팔팔 끓은 물에게 숙우는 무대에 오르기 전에 잠시 머무르는 대기실이다. 식힘의 시간. 이 기다림을 알아야 최고의 공연을 할 수 있다.



숙우는 물을 먼저 보내고, 뒤늦게 무대에 오른다. 다관(찻주전자)에서 차가 우러나면 제 몸으로 모두 다시 담는다. 여러 잔에 나누거나, 여러 번 나누어 마실 때, 공평하게 같은 농도의 맛으로 나눠주기 위함이다.



생김새로 보면 주인공은 단연 다관. 형태, 새겨진 무늬... 어느 하나에는 힘이 들어가서 보다 화려하다. 찻잎을 직접 품는 다구이기에 찻자리의 중심이 된다. 다관이 주연의 격이라면 숙우는 조연이다. 주연과 결을 함께 해서 어우러져야 하지만 더 돋보이지 않는다. 어떨 때는 다른 다관들과도 함께 놓여야 한다. 그래서 조연은 수수하면 더욱 좋다. 어느 주연이 수수할 자유가 있는가. 조연은 자유롭지만 드는 자리는 몰라도 나는 자리에서는 존재의 부존재감이 확연히 드러난다.



그럴듯한 주연. 나는 오래도록 주연의 삶을 고집했다. 이상이 높고 현실은 따라가지 못해서 종종 불행했다. 화려한 그들의 삶을 시기, 질투했다. 나의 역할이 틀렸다고 여겼지, 다르다고 깨닫지 못했다. 그런 날들에 이 작은 사발이 함께 했다. 누군가의 대기실이 되어도,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도 네 인생의 고귀함은 변하지 않는다고. 오히려 자유롭다고. 아마도 물을 담고, 따라 보낼 때마다 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먼 길을 돌아서 이 자리에 앉았을 때, 숙우는 역시나 다관 옆에 겸손하게 비껴서 있었다.



나는 수수하다. 그래서 숙우처럼 어느 무대에나 올라갈 수 있다. 이 진실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자유롭다.




매거진의 이전글 강아지 길들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