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째 비가 내린다. 가을비는 온도는 낮지만 습도를 높여서 차향의 발산을 키운다. 이른 아침 다실 문을 열면 뿜어져 나오는 차의 향기, 선반에 쓰인 자작나무 냄새가 버무려진 그 밀도 높은 아로마에 한참을 취해 서있다. 나 혼자 맡기에 아까울 정도이다. 생활의 냄새가 배지 않은 다실에서 순수한 자연의 향을 즐기는 건 큰 즐거움이다.
늘 앉는 자리에 놓인 등받이에 기대어 비를 바라본다. 소나무가 보이는 기다란 창문에 알알이 맺히는 빗방울을 본다. 맺혀있다가 다른 방울을 만나면 합쳐지고 이윽고 무거워져서 주르륵-. 미끄러운 유리를 타고 못내 흘러내리는 비를 본다. 비는 이렇게 흘러내릴 수밖에 없다. 나는 그런 비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
빗소리는 다른 소리를 잠재운다. 동네를 가득 채우던 새소리도 잦아들었다. 이렇게 며칠 동안 비가 내리면 새들은 제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해 봤자 축축한 둥지 안에서 웅크리고 있을 텐데. 배 채울 것은 있는지나 모르겠다.
주린 새 생각은 뒤로 하고 나는 호사롭게 차를 한 잔 우린다. 비가 오는 날은 주로 무이암차를 꺼낸다. 기암절벽이 즐비한 중국의 무이산은 아열대림이라 늘 안개가 끼어있다. 암차의 특징은 암골화향(岩骨花香). 바위에 스민 꽃향기. 맑은 날에는 꽁꽁 싸매고 있다가, 태어난 곳과 비슷한 촉촉한 날씨가 되어야 고향 생각에 비로소 방비를 풀고 스민 향을 내어놓는다. 비는 암차에게 향수를 일으킨다. 나는 그새를 놓칠 세라 뜨거운 물을 다시 부어 차를 우린다.
암차의 기운을 느끼며 다시 비를 바라본다. 어떤 시간, 어떤 장소의 적절한 온도, 적절한 수분의 조건이 맞으면 오늘처럼 비가 내린다. 원인이 있기에 결과가 생기는 자연현상이다. 비를 그저 본다지만 비에 투영하는 마음에 따라 비가 변한다. 내 마음이 기쁘면 빗소리가 즐겁고, 내 마음이 불편하면 비도 싫어진다. 세 사람이 비를 바라보고 있다면 세 가지의 비가 오고 있을 테지. 세상만사가 마음에 비쳐 보인다.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은 연습을 해도 늘 어려운 것. 그래서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비를 피하지 못해서 안타까운 새가 되기보다, 비를 고대하는 무이산의 바위가 되어본다. 바위의 마음으로 비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