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몇 년 동안 제일 멋지다고 생각했던 회사 이름이 하심下心이었다. 내세우지 않고 기꺼이 낮은 곳에 자리하는 마음. 스스로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 같은 마음. 내세우지 않으면 주장할 것이 없고, 주장할 것이 없으면 아는 것이 없고 아는 것이 없으면 집착할 것이 없고 집착할 것이 없으면 비어서 걸릴 것이 없는 것이 바로 하심이라는 불가의 말씀처럼, 벗은 내세우지 않겠다는 겸손의 마음으로 회사 이름을 지었다. 그러나 은둔해야 할 이름은 내게 무엇보다 강인한 다짐, 포부로 느껴졌다. 자기를 드러내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세상에서 역행을 지향하는 희귀한 이름은 본의 아니게 더욱 드러났고, 차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마저도 철저하게 계획된 전략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어느 날, 친구는 샘이 나도록 이 멋진 이름을 내려놓겠다고 했다. 이름 아래서 일궈낸 많은 것들과 앞으로도 충분히 얻을 수 있을 것들을 내려놓고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다고 했다. 본인은 담담했는데 외려 내가 더 아쉬운 마음이었다. 쥔 것을 놓는 것은, 없던 것을 쥐려는 것보다 어렵다. 안정을 바라지 않고 더 큰 꿈을 위해 다시 하심을 선택한 용기마저도 샘이 났다. 그는 나보다 어리지만 큰 사람이었다.
산 중 도랑보다는 시냇물이, 그보다는 강물에 더 많은 사람을 품을 자리가 있는 것처럼 그 낮은 이름의 마지막 자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아쉬움과 축하, 격려를 보냈다. 차에 대한 그의 진심을 추억할 기념품으로 그가 내게 찻잔을 선사했다. 차를 마실 때마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 새겨둔 ‘下心’. 처음 이 찻잔을 만들고 내게 자랑했을 때, 우리는 함께 암차를 마셨다. 찻잔은 이후로도 자주 사용했는지 글자의 검은 잉크에서 푸른 물이 빠지고 붉은 갈색만 남아 있었다. 이제 오랫동안 벗의 이름이었던 ‘하심’ 이 내게 가르침을 주기 위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와 찻잔을 기울이며 물었다. 후회되지 않느냐고. 묻고 보니 물처럼 흐르는 사람에게는 참 어리석은 질문이어서 우리는 다시 차를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