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비뚤어질 때는 보듬이를 꺼낸다. 보듬어 안는다는 뜻을 가진 이 찻그릇은 이름처럼 두 손으로 안아야 한다. 보듬이를 마주 잡아 두 손이 평행하게 놓이면 무의식 중에 한쪽을 선호하는 팔다리가 비로소 높낮이를 맞춘다. 비뚤어진 몸이 정렬이 된다. 마음을 정렬하려면 먼저 몸이 바르게 돼야 한다. 보듬이를 안고 엉덩이를 들썩이며 자세를 갖추면 척추가 바로 서고, 의식이 몸이 있는 곳으로 모여든다. 출렁이던 수평계가 잔잔해지는 듯 한쪽으로 기울었던 마음이 수평을 맞추는 시간으로 접어든다.
한쪽으로 기우는 마음. 나는 관찰력이 좋은 편이지만 관찰한 것을 해석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이 이 기우는 마음이다. 좋은 것에는 더 긍정적인,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은 더욱 부정적인 추를 하나씩 더하다 보면 가치중립적인 것은 하나도 남지 않고, 이 쪽 아니면 저 쪽으로 분류가 된다. 이런 시비심이 어떤 날은 참으로 버겁다. 괴롭지만 인식의 순간 분별이 생겨나기 때문에 그 시작을 막을 의지가 솟을 때는 이미 늦다. 이 정도가 되면 나는 인식을 하지 않도록 잠시 외부의 자극을 차단하는 수 밖에는 없다. 그럴 때 보듬이를 안는 것이다.
겨우내 응축하다 처음으로 움터 올라오는 순을 따 만든 우전차를 보듬이에 담는다. 옳고 그름 이전에 세상에 태어날 수 있을까 하는 것만이 지상과제였던 대견한 새 순들을 보노라면, 살아있음 자체가 축복임을 깨닫는다. 굳이 가르고 나눠서 얻을 거라고는 그에 대한 집착과 후회뿐.
둥근 보듬이의 양감이, 차의 온기가 손 안을 가득 채우면 이 손에 닿을 수 있는 모든 것은 탄생의 축복과 생명의 온기를 지닌 존재들임을 알아차린다. 대어볼 수 있는 자나 달아볼 수 있는 추를 들이대기에 너무나 고귀한, 단독자들이기에 나는 겸손해지기로 한다. 함부로 판단하지 말기로 한다. 양 손으로 마음의 균형을 잡으니 평화가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