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제이 Oct 26. 2021

골든 드롭



다관 안에서 뜨거운 물과 가녀린 찻잎이 전투를 치른다. 물이 불의 칼을  열기로 찻잎을 제압하여 기어이 색色, 향香, 미味를 모두 탈취한다. 찻잎은 온몸을 꼬아 꽁꽁 감추던  것을 모두 내어 주자 힘없이 늘어져 버렸다. 다음 전투부터는 부전승이 확실시되자, 물이 승전보를 알리려 다관의 물대로 뿜어져 나온다. 힘찬 물줄기는 숙우로 쏟아져 들어가며 소리 없는 개가를 부른다. 개선 행진은 언제나 그렇듯 앞서는  어설픈 보병들이고 뒤를 이어 색향미의 전리품으로 치장한 묵직한 용사들이 따르다가, 이윽고 금빛 왕관을  수장이 나타난다.



골든 드롭 Golden-drop. 다관에 우린 찻물의 마지막 한 방울을 말한다. 다관의 물을 따르는 중에도 차는 우러나고 있으므로 찻물은 점점 농도가 짙어진다. 골든 드롭은 다관 속에서 가장 오랜 시간 우러났기 때문에 바디감이 가장 좋고 감칠맛과 더불어 풍부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이 골든 드롭을 따라 내지 않으면 계속 남아 차를 우려내므로 쓰거나 떫은맛으로 다음번 우림에 영향을 준다. 얻을 것을 극대화하면서 앞으로 잃을 것을 최소화시키기 위해서 차의 마지막 한 방울은 이렇게나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얻을 것의 최대와 잃을 것의 최소의 접점을 만족시키는 ‘마지막이란 대체 언제란 말인가. 일단 차에 뜨거운 물을 붓고나서부터는 내가 개입할  없는 그들만의 전투, 언제나 물이 이기는 전투가 시작되마지막  방울을 만나는 일은 내게 기다림이다.  기다림의 끝을 가려내는 것이 나는  고민이었다. 이미 젖은 찻잎과 물은 완벽히 분리해낼  없으므로 한없이 기다릴  다. 진지하게 개선 행렬을 바라보다가  ‘그만 외쳐야 하는 때는 끝이 나서가 아니라 끝을 만들어내야하는 때이다. 마지막을 정하는  있어서 자신이 없는 나의 선택은 ‘최고 ‘최대’, ‘최소  ‘최선’. 오늘도 나는 그렇게 마지막  방울을  의지로 결정하고, 금빛 왕관을 운다. 기울인 다관을 제자리에 내려놓는다.




이전 13화 취후간화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