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관 안에서 뜨거운 물과 가녀린 찻잎이 전투를 치른다. 물이 불의 칼을 쥔 열기로 찻잎을 제압하여 기어이 색色, 향香, 미味를 모두 탈취한다. 찻잎은 온몸을 꼬아 꽁꽁 감추던 제 것을 모두 내어 주자 힘없이 늘어져 버렸다. 다음 전투부터는 부전승이 확실시되자, 물이 승전보를 알리려 다관의 물대로 뿜어져 나온다. 힘찬 물줄기는 숙우로 쏟아져 들어가며 소리 없는 개가를 부른다. 개선 행진은 언제나 그렇듯 앞서는 건 어설픈 보병들이고 뒤를 이어 색향미의 전리품으로 치장한 묵직한 용사들이 따르다가, 이윽고 금빛 왕관을 쓸 수장이 나타난다.
골든 드롭 Golden-drop. 다관에 우린 찻물의 마지막 한 방울을 말한다. 다관의 물을 따르는 중에도 차는 우러나고 있으므로 찻물은 점점 농도가 짙어진다. 골든 드롭은 다관 속에서 가장 오랜 시간 우러났기 때문에 바디감이 가장 좋고 감칠맛과 더불어 풍부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이 골든 드롭을 따라 내지 않으면 계속 남아 차를 우려내므로 쓰거나 떫은맛으로 다음번 우림에 영향을 준다. 얻을 것을 극대화하면서 앞으로 잃을 것을 최소화시키기 위해서 차의 마지막 한 방울은 이렇게나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얻을 것의 최대와 잃을 것의 최소의 접점을 만족시키는 ‘마지막’이란 대체 언제란 말인가. 일단 차에 뜨거운 물을 붓고나서부터는 내가 개입할 수 없는 그들만의 전투, 언제나 물이 이기는 전투가 시작되고 마지막 한 방울을 만나는 일은 내게 기다림이다. 그 기다림의 끝을 가려내는 것이 나는 늘 고민이었다. 이미 젖은 찻잎과 물은 완벽히 분리해낼 수 없으므로 한없이 기다릴 수 없다. 진지하게 개선 행렬을 바라보다가 ‘그만’을 외쳐야 하는 때는 끝이 나서가 아니라 끝을 만들어내야하는 때이다. 마지막을 정하는 데 있어서 자신이 없는 나의 선택은 ‘최고’나 ‘최대’, ‘최소’가 아닌 ‘최선’. 오늘도 나는 그렇게 마지막 한 방울을 내 의지로 결정하고, 금빛 왕관을 씌운다. 기울인 다관을 제자리에 내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