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후간화도 醉後看花圖>. 중국 송나라의 임포라는 인물을 그린 그림이다. 임포는 평생을 절강성 서호의 산속에 은일했다고 한다. 소박한 지붕 아래 두 사람이 술에 취했는지, 흥에 취했는지 발간 볼을 마주하고 서로에게 집중하고 있다. 임포는 간간히 멀리서 찾아오는 벗이 주는 일상의 파격을 즐겼을 것이다. 은일 거사는 넓지만 얄팍한 속세를 떠나온 것일 뿐, 은은하고 깊은 관계마저 외면하고자 숨어 사는 것이 아니다.
시원하게 나있는 창문 밖으로 멋스럽게 구부러진 매화나무가 보인다. 그 아래 소철을 지키는 바위 옆에서 다동이 찻물을 끓이기 위해 대롱으로 불을 지피고 있다. 어리지만 불 피우기에 능숙해 보인다. 뒷마당에는 대나무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여백의 마당에 두 마리 학이 한가로이 노닌다. 한 마리는 다시 오를 하늘의 푸름을 삼키고 곁의 짝꿍은 제 몸 살피기에만 관심이 있다. 이 그림은 볼 때마다 놀랍다. 300여 년 전 김홍도의 그림에 작은 나의 다옥(茶屋)이 추구하는 조형적 모습이, 그에 담고 싶은 품격이 고스란히 그려져 있다.
나는 작은 기윤재를 ‘사적인 티롯지’라고 부른다. 3평 남짓 작아도 어딘가에 달린 방이 아닌, 완전한 한 채의 공간은 당당함을 지녔다. 그 안에 품어줄 매우 사적인 세계에서 나는 안온하다. 한껏 열어젖힌 창문으로 자연을 초대한다. 바람도 앉아서 차 한 잔 하며 쉬다가는 쉼터 같은 롯지, 오두막. 그런 공간을 마음과 시간을 들여 가꾼다.
서호에 살던 임포는 그 지역의 명차인 용정차를 마셨을까. 윤이 나는 납작한 녹차들이 제 숙명을 거스르지 않고 유리 개완 안에 꼿꼿이 서서 지니던 푸름을 풀어놓는 것처럼, 임포도 그를 진심으로 담는 사람에게만 자신을 우려내는 올곧은 사람이었을 거다. 혼자도 좋고, 자연도 좋지만 역시나 나의 사적인 세계에 성큼 발을 들여줄 진실한 친구와의 차 한잔을 고대한다. 물론 물은 다동이 아니라 내가 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