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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이 Oct 19. 2021

말씀



‘말씀’이라고 일컫는 가르침에 종속되는 걸 피하는 경향이 있다. 내로라하는 미션스쿨들을 다녔지만, 졸업 후에는 교회에 발걸음 하지 않았고, 절에서 한 달을 가까이 지냈지만, 불교 신자는 아니다. 내가 잘났다는 말이 아니라, 모든 종교와 철학이 나름의 가치와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느 한 곳에 의지할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는 편이 맞다. 좋게 말하면 중도주의자이고 부정적으로 말하자면 회색분자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나도 따르고 싶은 아포리즘 하나쯤은 있다.



“차茶를 마시는 나라는 흥한다. 동트기 전에 일어나라. 기록하기를 좋아하라.”



심플한 세 문장. 첫 문장은 나의 신념과 같고 두, 세 번째 문장은 동경하는 삶의 모습이다. 다산 정약용의 말씀이다. 그는 호에서부터 차 애호가임이 드러난다. 다산茶山은 차가 많이 나던 전남 강진의 만덕산을 뜻한다. 문헌을 뒤져보면 그의 차에 대한 열정은 놀라울 따름이다. 게다가 그는 지식경영에 대한 집념도 대단했다. 조선에서 왕의 명이 아닌 이상, 자발적으로 팀을 구성해서 방대하게 책을 저술했던 역사가 또 있을까.  500여 권의 저작에 관여했던 그를 최고의 디렉터라고 생각한다. 몇 줄 쓰기에도 끙끙대는 나에게는 우러러볼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동트기 전에 일어나라. 기록하기를 좋아하라. 두 가지는 실천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모든 것에는 시절 인연이 있나 보다. 같이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곁에서 함께 하면서 나는 이제 무거운 몸을 매일 동트기 전에 일으킨다. 그리고 차를 마시며 기록을 한다.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곧 1년이 된다. 차를 마시다 보니, 마음으로는 변하고 싶어도 몸으로는 변하려 하지 않던 시간들이 지나가고 행동의 때가 왔다. 차를 마시면 나라와 민족은 몰라도 내가 흥하는 것은 확실하다. 이제야 말씀에 조금 다가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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