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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이 Oct 17. 2021

쓰임과 버림을 고민하는 시간



서울에서도 제일 활기찬 동네에서 나고 자랐다. 한국에서 태동하는 젊은이의 문화라면 그곳을 빼고는 말할 수 없었다. 사람들의 웃고 우는 소리가 밤을 수놓곤 했다.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은 밤의 화려함도 여명이 드러나면 잘잘이 부서진다. 밤의 사람들이 밟은 길을 나는 등굣길로 걸었다. 아침마다 내가 보는 건 부서진 밤의 잔해들이었다. 한 밤 동안 이렇게나 많은 것들이 소비되고 버려진다는 걸, 나는 보고 또 보았다. 그러다 나도 팔팔한 20대가 되어 밤거리를 헤매게 되자 알던 것들을 애써 외면하며 지냈다. 버려지는 것들의 심상은 불편하게 마음 한 켠에 자리하고 있었지만.



차를 마시면서 나는 그 불편함에 답하기 시작했다.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은 버리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 차는 자연에서 온다. 차 한 잎이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손을 거쳐야 하는지 아는 사람들은 어떤 것도 허투루 버리지 않는다. 혹 쓰다가 버리더라도, 왔던 그대로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들을 골라서 사용했다. 나뭇잎을 따와서 접시 위에 장식으로 깔아 썼고, 나뭇잎은 마시고 난 차와 최소로 사용한 물과 함께 자연으로 돌아갔다.



물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서 쓰임을 바꿀 수도 있다. 강가에서 주워온 돌은 차 집게 받침으로 쓸 수 있고, 옛날에 물을 담아 쓰던 골동 옹기는 찻물을 버리는 퇴수기로 사용한다. 솔방울을 몇 개 주워와서 화로에서 태우면 천연 인센스 콘이 된다.



버리지 않으려는 노력은 고쳐 쓰는 시도로도 연결된다. 주로 도자기로 만들어지는 차도구에게 깨지는 건 숙명과 같지만, 나에게는 불상사와 다름없다. 다행히 ‘킨츠키’라는 도자기 수리 기술이 오래전부터 발달해왔다. 이가 나간 부분은 갈아내어 채워 넣고, 깨진 부분은 접착해서 그 위에 금분이나 은분을 올리는 기술이다. 금칠을 한 기물에게는 제2의 인생이 열린다. 고친 모양새가 그 자체로 독특하거니와 어떤 때는 원작보다 더 매력적이기도 하다.



쓰임과 버림을 고민하는 시간. 하루 중 몇 시간이라도 허투루 쓰고 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기억의 한 켠을 향해 대답했다. 그 시간이 나를 꽤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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