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제이 Oct 16. 2021

어른의 소꿉놀이



흔히 차 마시는 일을 다도(茶道)한다고 말한다. 나는 도(道)라는 글자가 어렵다. 한량없는, 그 거창함 때문에 ‘다도’라는 말이 쉽사리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길 위에서 ‘도를 아십니까.’를 묻는 사람들에게 되묻고 싶다. 당신은 정말 ‘도’가 어떤 의미인지 아느냐고. 차는 자체로 깊이 있지만 , 차사(茶事)를 다도로 규정하면 어려워진다. 나에게도, 함께 마시는 상대에게도 차는 어려운 존재가 되어버린다.



차는 오히려 놀이에 가깝다. 날씨와 기분에 알맞을 차를 고르고, 그에 어울릴 찻그릇을 꺼내고, 차와 함께 먹을 다식을 올린 후, 길 가에 아무렇게나 피어난 들꽃을 잘라와 화기에 꽂는다. 테이블에 깔아 두었던 다포가 어울리지 않는 듯하면 걷어내고 다른 다포를 찾아 깐다. 맛있게 우려서 유유하게 마신다. 머릿속에 그린 찻자리를 이렇게 저렇게 차려내는 건 내게 소꿉놀이다. 어릴 적에는 컵에 흙을 담고, 풀을 짓이겨 접시에 내어 먹는 시늉을 했지만, 지금은 진짜 차와 군것질거리를 준비해서 먹고 마신다는 것이 다를 뿐. 어른이 되어도 소꿉놀이는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즐겁다.



소꿉놀이는 짝이 있어야 재미가 배가 된다. 내 곁에는 놀이에 일가견이 있는 차 친구가 있다. 5살 아들을 다실에 초대하면, 아이는 친구들을 더 데리고 온다. 찻잔 왼쪽에는 초록 자동차, 오른쪽에는 빨간 공룡을 놓았다. 차총. 우리 어른들은 이런 친구들을 ‘차총’이라고 부른다. 차 마실 때 곁에 두는 ‘총애하는’ 친구라는 의미로, 찻자리에 두는 작은 오브제를 말한다. 가르쳐주지 않아도 아이는 차 마시는 일의 알맹이가 놀이에 있음을 꿰뚫어 본다.



종종 찻자리에 초대를 받는다. 찻자리 주인의 얼굴에서 아이 같은 표정이 비칠 때, 이 사람도 차를 가지고 놀 줄 아는 사람이구나. 한다. 작은 기윤재에 걸음한 손님도 내 얼굴에서 아이를 엿볼 수 있기를. 내 소꿉놀이의 짝으로 함께 즐겨주기를.




이전 07화 비가 만든 거울 곁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