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제이 Oct 15. 2021

비가 만든 거울 곁에서


비가 오면 거울이 생긴다. 방킬라이 나무 데크 위에 물이 얕게 고여서 여기저기 거울이 만들어진다. 다실은 좌식이라 자리에 앉아서 자연스레 눈을 두면 시선은 비 거울에 가닿는다. 백설공주의 새엄마가 거울로 세상을 들여다보듯이, 나도 요리조리 고개를 움직이며 거울 속을 살핀다. 늘 보아왔던 주변의 풍경들이지만 바람결에 따라 왜곡되고, 떨어지는 빗방울에 부서지고, 거울의 크기만큼 보일 것만 보인다.



빗줄기가 멈추어 데크 앞으로 자리를 옮겨 쪼그린다. 방부목은 물이 금세 마르기에 거울은 오래가지 않는다. 비가 내 얼굴을 비춘다. 잿빛 하늘을 더 잿빛으로 비춘다. 높은 것들이 땅에 내려와 앉은 지금, 손가락을 가만히 대어 본다. 새들만 가닿을 수 있는 집 앞 전신주 꼭대기에 나도 닿아본다.



내 마음에도 거울이 있다. 무언가를, 누군가를 처음 받아들일 때, 나는 마주하고, 묻고, 부딪히기가 조심스럽다. 그래서 마음의 거울에 먼저 비춘다. 대상을 뒤집어보고, 흩트리고...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보고 싶은 만큼만 본다. 이 거울은 나의 안전을 중요시할 때 나쁘지 않은 도구이다. 다가가기 어려운 대상은 끌어내려다 주고, 부딪혀야 할 상황을 여러 번 연습하게 만든다. 그러나 관계를 맺는 데는 시간의 허들을 만들기도 한다. 비추어보는 것은 에너지가 많이 들기 때문이다. 말라서 점점 작아지는 비 거울을 지켜보면서 내 마음의 거울도 조금 말라버리면 좋을 텐데-생각해본다.



관계를 맺는 일이 차를 마시는 순간처럼 솔직 담백하면 좋겠다. 복숭아 향이 나서 복숭아 향이 난다고, 달아서 달다고, 따뜻해서 따뜻하다고 있는 그대로 말하고 싶다. 손가락으로 온기가 있는 사람에게 직접 가닿고 싶다. 발간 해가 뜨면, 거울에서 눈을 거둬야지. 일단은 그 사람에게 당신의 향이 궁금하다고 말해야겠다.




이전 06화 철부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