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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이 Nov 02. 2021

파놉티콘



51日




031-540-****

080-210-****

08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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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널에 적힌 번호를 누르자, 여자의 멘트가 나온 후 통화가 끊긴다. 언제부터인가 휴대폰을 귀에 대지도 않고 안심콜을 걸었었는데 오늘은 무선 이어폰을 꽂고 있어서 오랜만에 여자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방문 등록이 완료되었습니다.’ 밝은 억양의 멘트가 끝나자마자 나는 안중에도 없는 듯 끊어지는 순간, 나는 소름이 돋았다. 이후로 서너 번, 안내받은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고 번번이 여자의 멘트를 확인했다. 나는 알아서 나의 위치를 보고했고, 수화기 너머 진짜일리가 없는 여자의 목소리는 나의 보고를 승인했다.



파놉티콘의 심상이 문득 떠오른 것은 다 늦게 돌아오는 차 안에서였다. 파놉티콘. 공리주의자로 유명한 벤담이 고안했다는 원형의 교도소이다. 이 교도소 디자인의 핵심은 시선의 비대칭성이다. 수감자들의 방은 안이 훤히 보이도록 되어있다. 밤에도 불을 밝혀 수감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보인다. 교도소 한가운데는 감시자의 탑이 있다. 이 탑은 안이 어두워서 피감시자 들은 감시자가 자기를 보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언제든 자신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상황이 오래되다 보면 스스로 통제와 검열을 내면화해서 재사회화가 된다는 것이다. 후에 미셸 푸코는 파놉티콘을 권력으로 설명한다. 휴대폰 통화목록을 보면서 나는 교화된 피감시자가 된 기분이었다. 보이지 않는 여자의 목소리에 소름이 돋았던 것은 통제와 검열에 길들여진 내면이 감시자를 맞닥뜨리고 잠시 각성해서였을까. 검색을 해보니 이미 파놉티콘과 방역 체계에 대한 글이 많았다. 나는 참 둔한 사람이다.



오늘에서야 실내체육시설 방역 패스 소식을 들은 터였다. 내일 수영장을 가기로 해서 자발적으로 PCR 검사를 하러 가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요가원도 마찬가지였다. 지난주 후반부터 바빠서 요가원을 나가지 못하고 있었는데 기사를 읽고 , 접종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미쳤다.  지점이 무서운 것이었다. 백신을 맞고,  맞고, 검사를 받고,  받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게 주어지는 방침에 비판적 사고를 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받아들였음에 화가 났다. 요가원에서 입장이 어렵다고 한다면 말없이 환불을 하고 나올 것이다. 분노가 향해야  곳은 그곳이 아니니까.



벤담의 파놉티콘은 결국 영국 정부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왜? 인간의 존엄성을 해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코로나 초반에 확진자들의 동선을 속속들이 공개할 때도, 잔인하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목소리를 내지 않던 나는 다수를 위한 소수의 권리 침해에 무감각한 공리주의자였다. 마이클 샌델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가 저자도 놀랄 만큼 성공을 거두고, 거대담론을 고민했던 우리나라는 지금 어떤 사회인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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