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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이 Oct 31. 2021

불효자는 웃습니다.



50日






독립심이 강했고 자기 주도적이었던 나는 뭐든 혼자 결정했다. 스스로에게는 좋다고 볼 수 있지만, 부모님께는 당황스럽거나 서운하셨던 날이 많으셨을 거다. 부모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이 불효라면, 나는 살면서 불효란 불효는 참 많이도 저질렀다. 그래도 부모님은 미리 부모 수업이라도 받으신 듯, 어떤 일에도 의연한 분들이었다. 스무 살 갓 넘긴 딸이 혼자서 인도를 다녀오겠다고 말했을 때, 집에서 나와 시골에 살러 들어간다고 했을 때, 이름도 못 들어본 남도의 절에 머물겠다고 말했을 때, 떠들썩했던 연애사로 집이 난장이 될 때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으셨다. (않아 보이셨다.) 뭐가 되었든 내가 내린 결정을 존중하고 선택에 지지를 보내주신 덕에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떠돌며 살았지만, 나는 매번 무사히 돌아왔고 삶을 스스로 조련해갔다. 나에 대한 믿음이 컸기에 모든 게 가능했다고 감사하면서도, 끝없이 두 분을 시험의 길로 인도했던 것 같다. 



내 의지보다 더 큰 사랑으로 나를 품고 계셨기에, 나는 안전할 거라고 부모님은 생각하셨을 거다. 하지만 나를 향한 믿음으로도 나의 건강만큼은 당신들이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아셨을 때, 두 분은 흔들리셨다. 아이를 낳아 보니, 간 밤에 머리가 펄펄 끓던 아이가 다음날 잘 먹고 잘 싸는 것만 봐도 이 이상의 효도는 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니 당시에 전화로 ‘저기, 엄마. 나 큰 병원에 가보래. 암이라는 것 같아.’라고 엷은 웃음을 띠며 소식을 전했을 때 내 표정도 보지 못하는 엄마가 받았을 충격은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초기이고, 상대적으로 예후도 좋고, 착한 암이라고 불린다는 말 따위가 안중에 들어왔을 리가 없다. 의사에게 선고를 받기 전, '어떤.. 가요?'라고, ‘어떤’과 ‘가요’조차 한 호흡에 묻지 못했던 아빠의 목소리는 나만 알아챌만하게 아주,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그 날로부터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났고, 두 분은 평소처럼 지내시지만 내 몸에 대해서는 불안을 항상 갖고 계신 듯하다. 산책을 나간 길에 찬 바람이 불면 엄마는 당신의 목에 감겨있던 스카프를 풀어 마흔을 바라보는 딸의 맨 목을 감싼다. 기면증처럼 쏟아지는 잠을 주체하지 못하면 아이를 봐주신다며 편히 자라고 이부자리를 펴신다. 엄마 아빠는 내 건강 미어캣이 되셨다. 5살 손주에게 하는 걱정을 내게 똑같이 하는 부모님께 대꾸한다. 아유-괜찮다니까.



별일이라곤 ‘확찐자’가 되는 것 밖에 없던 몸에 몇 달 전, 오른쪽 등 통증이 나타났다. 근육 통증과는 달라서 나타나자마자 그나마 제일 의심이 가는 부분으로 진료를 보러 갔다. 유난스럽기도 하지만 그게 지금의 가족들에게, 나에게 예의인 것 같아서 바로 큰 병원으로 갔다. 검사를 진행했지만 특이소견이 없었고, 신기하게도 병원을 다녀온 다음 날로 통증이 사라졌다. 



잊고 지냈던 그 통증이 오늘 갑자기 다시 나타나면서 부모님께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남편에게만 조용히 말하고, 가족들과 야외 카페에 앉아 있었는데 일어나는 순간, 등 뒤에서 날카로운 걸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등을 펴지 못하고 서있다가 자리에 앉았다. 결국 이러저러한 그 간의 이야기를 전했는데 두 분은 그래? 왜 그러지..라고만 말씀하셨다. 이후로 아무 말 없이 저녁을 드셨고, 아이와 보드게임을 하셨고,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가셨다. 



간단히 집 정리를 마치고 앉았는데, 카톡방에 메시지가 잔뜩이다.



-오른쪽 등 통증 의심되는 병 5가지

-오른쪽 옆구리 통증 의심되는 병 8가지 정리

-등 통증, 확인해야 합니다.

-등 통증 10가지 원인

-등이 아픈 이유



등등. 엄마, 아빠가 링크로 공유해준 글을 읽어보니 의심되는 병이 십 수개는 되었다. 생물시간 이후로 오른쪽에 위치한 장기들을 그림으로 확인한 것은 처음이었다. 가장 경미한 병부터 암까지. 부모님이야 최악이 걱정되시는 거겠지. 내가 메시지를 확인을 했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전화까지 왔다. 아까는 말이 없으시더니 불안을 조장하는 글들을 읽고 나니 걱정이 커지신 것 같다. 진료과를 바꿔서 MRI를 찍어봐, 아니면 주치의가 있는 병원에 건강검진을 내가 잡아줄게. 내가 젊었을 때 담낭염으로 입원을 했었잖아, 가족력 아닐까? 까지. 자식이 불효라고 생각하는 것이 부모 입장에서는 다 부모 탓인 것만 같다. 마음의 짐을 덜어드리기 위해서라도 불효자는 웃을 수밖에 없다. 아이 참~배에 가스 차서 그런 거면 어떡하려고~이런 걸로 대학병원에서 종합검진을 받아~의사가 웃어요 웃어. 부모님이 베겟머리에 걱정을 올려두고 주무실 걸 생각하니까 마음이 저리다. 그러니까 불효자는 내일도 웃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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