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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이 Oct 28. 2021

산사의 세 친구



49日






수종사로 오르는 길은 가파르고 험했다. 걸어서 오를 엄두가 나지 않아서 4륜 구동 자동차로 부앙 부앙 엔진 소리를 뿜어내며 올라간다. 코너마다 한 두대씩 자동차가 주차되어 있는데  처음부터 오르기는 힘드니, 산 중턱부터 걸어 올라가려고 세워둔 듯하다. 다산, 초의, 추사. 그 옛날의 차인들이 이 산 중 절을 종종 찾고 그리워했다는데, 대관절 무슨 매력이 있기에 차 한 잔을 하러 이 가파른 산을 올랐는지 알 수가 없었다. 등산에 서투른 나는 자동차를 선택했지만 조수석에 앉아서도 무서워서 안절부절못했다.



산의 7부쯤에 잠시 서서 단풍을 구경하는데 세 명의 중년 아주머니들이 산을 걸어 올라온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먼발치에서도 깔깔 웃는 소리가 귀에 꽂힌다. 그녀들의 옷차림은 낯설지가 않다. 반짝이는 소재에 무릎까지 내려오는 얇은 패딩, 등산바지 혹은 검은 스판 바지, 자외선을 차단해줄 챙이 긴 모자, 선글라스, 덮개가 있는 휴대폰을 손에 클러치처럼 쥐거나 줄을 달아 목에 걸고 있는 세 친구는 동네에서도 흔히 볼 법한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이었다.



다시 차를 타고 올라가면서 백미러를 보니 세 사람은 휴대폰 덮개를 열고 손을 멀찌감치 뻗어 주변 사진을 찍느라 바빠 보였다. 일주문에 다다랐다. 일주문부터는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남편과 미륵불 석상을 지나며 이 높은 곳에 석상을 옮기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부터 절을 짓는 데 사용한 나무는 이 주변에서 구해왔을까, 지금 밟고 올라가는 이 적당히 반듯한 돌계단들은 언제 다시 만든 걸까. 안 해도 그만이지만, 하면 즐거운 상상이 되는 이야기들을 나누며 수종사 경내에 들어섰다.



발아래 그림이 펼쳐졌다. 모든 의문이 풀렸다. 수종사는 차경의 진수를 보여주는 곳이었다. 다산 정약용이 지은 시에서 ‘문을 열면 강물이 흘러들어오는 것 같았다’라고 쓴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의 풍광이 현실감 없이 CG처럼 펼쳐져 있었다.



산신각에서 넋을 놓고 두물머리를 내려다보고 있으니 아까 마주쳤던 세 아주머니가 해탈문을 지나 경내에 들어서는 게 보인다. 여전히 유쾌한 세 명은 작은 것에도 감동하는 소녀들처럼 어깨를 들썩이며 절에서 보이는 모든 것에 감탄사로 감정을 표현했다. 여래불을 보면서 와아-, 곳곳에 놓인 소원돌탑을 보고 어머나~코로나 때문에 삼정헌에서 차를 마실 수 없다는 안내문을 보고는 아이고~ 그러다가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두물머리를 보고는 히야~. 중년 친구들의 나들이는 행복해 보였다.



묵언.이라고 적혀있는 푯말은 여기가 사진 포인트라고 쓰인 것과 같았다. 그 위치에서 두물머리가 걸리는 것 없이 가장 잘 보였다. 세 친구는 그런 포인트를 귀신같이 알아차렸다.

등에 비해 앙증맞게 작은 배낭을 멘 아주머니가 그 자리에 친구를 한 명씩 세우고 사진을 찍어준다. 두 친구는 허리춤에 손을 올리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허벅지쯤 올라오는 기왓장에 기대어 사진을 찍었다. 정작 사진을 찍어주던 아주머니는 자신은 사진은 찍지 않는다고 대웅전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수줍은 것인지, 아니면 아이 사진만 찍고 자기 사진 찍기는 사양하던 습관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는 우리 엄마와 엄마를 닮아가는 나를 보는 것 같아서 왠지 마음이 좋지 않았다. 마주칠 때부터 길을 가장 앞서가고 있던, 등산바지를 늘씬하게 차려입은 아주머니가 뒤돌아 가려는 친구를 불러 세운다.



“야~우리가 여기 또 언제 와보겠니? 여기 와서 서봐바. 너도 사진 찍어~!”


“그래, 야 얼른 서봐. 내가 찍어줄게!”



다른 친구도 거들어 말하니 아이 참, 얘들은. 하면서도 싫지 않은 듯 아주머니는 두 손으로 배낭끈을 꼭 쥐고 푯말 앞에 서서 수줍게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그린다. 그제야 나는 마음이 놓였다. 친구들의 말은 구구절절 옳았다. 지금은 지금 뿐이다. 언제 또 올지 모르는 곳에서 후회 없이 마음껏 웃고, 찍고 싶은 만큼 사진을 찍어야 한다. 친구의 지금을 남겨주려는 마음에 나는 남편 모르게 혼자 울컥했다. 그녀들은 그러고도 한참 동안 산사의 이곳저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친구는 오늘도 추억을 쌓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휴대폰에 , 하늘, ,  그리고 친구들의 예쁜 모습이 얼마나 가득 담겨있을까. 종종 사진첩을 열어 친구들이 여전히 건강한 모습으로 담겨있음을 확인하며 좋아하고 안도하겠지. 가파른 산을 올라서 힘들었던 기억보다는 친구와의 아름다운 가을을 추억하겠지. 아주머니들 덕분에 돌아오는 길에 휴대폰 사진첩을 훑어보며 친구들과의 시간을 추억했다. 작년과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친구들과의 사진이 별로 없다. 이번 연말 모임에는 사진을 많이 찍어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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