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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이 Oct 27. 2021

까치와 땅콩



48日






동네에서는 젊은 축에 속하는 여자가 반투명한 하얀 쟁반을 들고 나와 바닥에 내려놓는다. 나의 예민한 눈과 코의 감각으로 보아 쟁반 위에 듬성듬성 놓인 저것들은 먹을 것이다. 그러나 흔치 않은 형태로 보아 땅 위의 열매는 아닌 것 같다. 단단한 껍질을 쪼아내는데 품이 좀 들겠다. 새로운 먹거리는 나를 설레게 한다. 옆집 교수네서 감만 먹다 보니 질리던 참이었는데.



하지만 볕 아래 널려지는 것들은 주의를 해야 한다. 가을에는 인간들이 오만가지 것들을 널어놓으니까. 어수룩한 녀석은 씁쓸하고 아린 도라지나 가까이만 가도 코가 오그라들 듯 매운 뻘건 고추를 생각 없이 쪼으고 종일 퉤퉤 거리며 괴로워한다. 인간들은 그 쓰고 매운 걸 대체 왜 먹나 몰라.



바다는 안 가봤지만 사람들이 검푸른 심해를 닮았다는 나의 날개는 추수를 마치고 황량해진 땅에서 도드라져 보인다. 그러므로 여자가 널고 간 저것들에게 접근할 때는 눈에 덜 띄도록 천천히, 은근 스리슬쩍. 동선을 계획하는 동안 애먼 민머리 바위를 발톱으로 움켜쥐고 서있다. 발톱이 쓸릴 때마다 바위 몸에서 작은 돌가루들이 바스스 떨어진다. 바위가 아프니까 꼬집지 말고 그만 가라고 채근한다. 그 소리가 듣기 싫어 소나무로 자리를 옮겼더니, 옆집 교수네 감을 그렇게 먹더니 살이 좀 올랐나 봐, 무거워. 가지가 툴툴거린다.



발견하자마자 과감하게 다가갔어야 했는데 유리문 안에 여자와 눈이 마주치면서 기회를 놓쳤다. 먹을거리를 찾는데 운을 바랄 수밖에 없는 신세가 초심자의 행운을 놓쳐버리자 발이 점점 떨어지지 않는다. 그림의 떡이 바로 이런 건가. 보이지만 먹을 수 없는 저 통통하고 구불한 껍질 속에 분명 여리고 보드라운 열매가 숨어있을 것 같은데. 여자가 내게 해코지할 확률은 아침마다 나를 위협하는 골목 끝집 흰 개보다도 낮다. 그래 봤자 쫓아 나와 손을 휘휘 젓고 말겠지. 그러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인간에 대한 두려움은 보다 근원적인 것이다.



여자와 내 사이에 놓인 유리문은 날다 보면 눈에 잘 안 보여서 친구들이 가끔 머리를 박기도 했다. 얼마 전에 천지분간 못하는 박새 새끼 한 마리가 머리를 박고 죽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만큼 안팎의 구별이 어렵도록 깨끗한 유리문 너머 나를 경계하는 여자의 눈빛이 여과 없이 전해졌다. 그 눈빛이 머릿속을 헤집는다. 그 눈빛이 성과를 이뤄내고자 하는 의지를 꺾어버린다. 새로움에 설레는 만큼 샘솟지 못하는 용기에 자괴감이 든다.



하릴없이 시간이 흐른다. 머리 꼭대기에 있던 해가 이제 뒤통수를 비춘다. 갈까, 말까, 옴짝달싹 하는 엉덩이에 윤기 나는 날개가 파르르 떨린 지가 오래다. 여자는 이미 자리를 옮겼지만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고 있겠지? 역시나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드르륵-. 여자가 키 만한 유리문을 열고 나온다. 이마에 손날을 얹고 뉘엿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더니 하얀 쟁반을 들어 올린다. 어, 어, 어- 쟁반을 든 여자의 등 뒤로 다시 드르륵- 문이 닫힌다.



결국은 옆집 교수네 감나무다. 오늘도 감이나 어야겠다.







*오늘의 용기를 막는 것은 자기 검열의 눈빛. 용기를 내지 못하면 어제와 다를 바 없이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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