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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이 Oct 25. 2021

가을맞이 홍시



47日






토끼풀을 실컷 뜯느라 굽은 무릎을 한 번 폈다가 암체어 소파에 털썩 앉는다. 에너지를 제법 소비했는지 달달한 홍시가 생각났다. 가을볕에 노랗게 물들어 가는 잔디나 보면서 먹으면 딱 좋겠다. 익을 대로 익어 냉장고에 넣어둔 홍시를 꺼내와 테이블에 올린다. 뚜껑을 여는 순간, 띠리리-리- 빨래 건조가 다 되었다는 알람 소리가 울려 퍼진다. 아차차, 가을을 맞이해서 홍시처럼 예쁜 주황빛 커버로 아이 침구를 바꿔주려고 했다. 뚜껑을 내려놓고 건조기에 이불, 침대 커버를 꺼내기 전에 소파 아래 깔아줄 러그를 세탁기에 욱여넣는다. 좀 작은 걸 살걸. 차가운 바닥에 발 디딜 일 없게 욕심껏 큰 걸 샀더니 보관도, 빨래도 영 어렵다. 세제를 넣고 가득 찬 세탁기가 잘 돌아가는지 잠시 서서 확인한다. 뱅글뱅글 돌아가는 세탁기. 시간도 뱅글뱅글 잘도 돌아서 벌써 다시 가을이다. 가을은 여러모로 바쁜 계절이지.



아이 이불과 침대 커버를 들고 테이블 옆을 지나며 홍시를 곁눈질한다. 날이 추우니까 침구 갈고 오면 적당히 시원하겠지. 침대와 주변을 구석구석 청소기로 밀고 걸레로 마이너스 몰딩 틈을 닦는다. 매트리스를 들어 네 귀퉁이에 새 침대 커버 고리를 끼우고, 원래 있던 이불 커버를 벗기고 새 이불 커버로 바꾼다. 이 슈퍼싱글 사이즈 침구 하나 바꾸는 데도 땀이 난다. 침대를 ㄱ자로 두르고 있는 창문 밖에 하늘이 바다처럼 파랗다. 올여름에는 바다도 못 봤는데, 지금이라도 가야 하나. 새로 단장한 아이의 침대가 파란 하늘과 대비되어 더욱 선명한 붉은빛을 띤다. 붉은.. 아, 홍시!



살짝 몸에 열도 올랐겠다, 시원한 홍시 한 스푼 떠먹으면 기운이 날 것 같다. 옆 집에서 가져다준 홍시가 곧 터질 듯 탱탱하다. 테이블에 다시 앉아 홍시를 숟가락으로 푹 찔러 퍼올린다.



띵동-띵동-



숟가락을 채 입에 넣지도 못하고 내려놓는다. 택배 아저씨가 인사할 새도 없이 며칠 전에 구입한 난방 텐트를 총알같이 내려두고 사라진다. 역시나 가을맞이용으로 아이방에 설치해줄 텐트다. 원터치라고 했으니까 금세 설치할 수 있겠지, 이것까지만 하고 먹자. 텐트는 예상치 못하게 내 뺨을 후려치면서 원터치로 대차게 펼쳐졌다. 매트리스를 다시 들어 올려 커버 고리 위에 겹쳐 고정한다. 허리가 조금 뻐근하다. 텐트를 설치하고 알전구 들을 꺼내어 건전지를 갈고 침대 손잡이에 훌훌 감는다. 전구들이 잘 들어오는지 확인을 한다. 햇빛이 강해서 지금은 잘 보이지 않지만 이따 밤에는 위력을 떨칠 거다. 아이는 너무 좋아서 소리를 지르겠지. 포장지들을 정리하며 그 사이 세탁을 마친 러그를 마당에 널고 오니 휴대폰 알람이 울린다.



1시 반. 기획 미팅.



, 미팅이 있었지. 문득 엄마가 생각난다. 매해, 계절마다, 혹은 달마다 주마다 엄마는 일하면서 집안일을 어떻게  해냈을까. 홍시와 티스푼 채로 접시에 랩을 씌워 다시 냉장고에 넣고 노트북을 연다. 나의 가을맞이는 조금 미뤄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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