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제이 Oct 24. 2021

농도農道



46日






불천노 불이과 不遷怒, 不貳過.
자신의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않고, 같은 잘못을 두 번 하지 않는다._<논어> 옹야편.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제일 알려진 건 명상일 테고, 잠이나 산책, 운동 등 저마다의 방법이 있을 것이다. 나는 주로 차를 마시며 내면을 들여다보는 방법을 택하지만, 마음이 격노할 때는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한가로이 차를 마시기가 어렵다. 차를 우리다가 뭐 하나 손에서 놓치기도 하고 차맛도 몰라본다면 정적인 방법으로는 마음을 가라앉히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이럴 때는 나의 뾰족한 감정이 마주치는 이에게 상처를 줄 수 있기에 혼자서 할 수 있는 동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그래서 봄부터 가을까지, 노여움이 남에게 옮길 듯 위태로울 때는 호미를 집어 든다. 내가 의도해서 심지 않은 풀은 모두 잡초이다. 잡초의 운명이 안타까워도, 불쌍하다고 방치할 수 없다. 호미로 잡초를 캐기 시작한다. 가을 끝자락에는 유독 토끼풀이 극성이다. 사이사이 민들레도 보이지만, 제거 1순위는 토끼풀이다. 토끼풀은 줄기 하나가 옆으로 퍼져 나가면서 뿌리를 새롭게 만들어 나간다. 그래서 캘 때는 여타의 잡초처럼 위로 잡아 뽑으면 안 되고, 호미로 바닥을 긁어 끝을 찾아내어 잡고, 줄기와 바닥면 사이를 살살살 긁어가면서 걷어내야 한다. 가는 중간에 끊기지 않고 긴 줄기를 모두 걷어내면, 사과 껍질을 끝까지 끊지 않고 깎아냈을 때와 같은 희열을 느끼면서 어느새 화도 잊는다. 심지어는 무아의 경지에 이를 수도 있다. 내가 그저 호미가 되는 것이다. 나는 이걸 우스갯소리로 농도(農道)라고 부른다. 다도는 어렵지만 농도는 호미 한 자루만 있으면 된다. 



머리가 복잡하고, 마음이 번잡할 때는 앉아서 되새김질만 할 것 아니라 자리를 털고 일어서야 한다. 정신없이 토끼풀 머리채를 잡고 뜯다 보니 오늘도 노란 농수레가 가득 찼다. 마당 일부와 더불어 마음도 말끔해졌다. 




작가의 이전글 '매일 한 알'을 망각하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