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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이 Nov 08. 2021

블랙 먼데이

코 막히고, 기막히는 입동



바람은 만나는 모든 것들을 못살게 굴어서 기어이 그의 일부를 나눠갖는다. 그래서 한 호흡의 공기에는 뭔지 모를 많은 것들이 담겨있다. 뭔지 모를 것들. 그것이 포인트이다. 11월의 공기는 온도로는 나이스 해 보이지만 사실 심술궂은 면이 있다. 그 뭔지 모를 온갖 것들로 무장하고 코를 공격하기 때문이다. 그 안에는 나뭇잎들이 스스로를 내려놓으면서 너도 함께 가자는 검은 유혹도 담겼을까. 찬란했던 단풍이 비처럼 쏟아질 때가 코에게는 가장 위험한 때이다.



아이를 가진 가을, 코가 막혔다. 손쉽게 구하던 약을 임신 중에는 먹을 수 없게 되면서 생지옥문이 열렸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나마도 잠이 들면 물속에서 숨을 못 쉬어 익사하는 꿈을 꾸며 다시 깼다.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해보았지만 별다른 원인 물질이 없었다. 적이 누군지 모를 때가 가장 무섭다. 두세 시간 근근이 자다가 거실에 나와 좀비처럼 서성이며 아침이 밝기를 기다렸다. 인생에서 가장 고생스러운 시기였다.



당시 난로 앞에서 불멍을 하며 소원했던 건 하나였다. 내 아이에게만은 이 고통이 전해지지 않기를. 그러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한 부모가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을 때 아이도 가질 확률이 50%라고 했다. 아이는 모 아니면 도 제비뽑기에 운이 없었다.



“엄마, 나 코가 막히기 시작해.”



저녁식사 중에 아이가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말을 건넨다. 말을 하자마자 보란 듯이 코를 컹컹 댄다. 그깟 낙엽 손으로 조금 쓸어 담았다고, 밖에서 미끄럼틀 몇 번 탔다고 코가 막힌다고? 아- 어김없이 11월이다. 얘는 왜 이렇게 나를 닮은 거지? 참, 내 아들이지. 피는 못 속인다는 걸 코막힘으로 알아차려야 하다니, 기가 막힌다.



밤새 아이는 숨을 못 쉬어 두 번 일어나 앉아서 나를 불렀고 다시 두 번은 잠꼬대로 짜증을 냈고, 나는 난방 텐트 안에 젖은 수건을 걸고 시간에 한 번씩 깨서 아이의 이불을 다시 덮어주며 숨소리를 확인했다. 아이는 모로 누워 머리를 살짝 들어 올려 숨을 쉰다. 그나마 숨 쉬기 괜찮은 자세가 있다. 밤새 비가 내린다. 의학적으로는 몰라도 내 경험 상 기압이 낮은 날은 코가 더 잘 막힌다. 계절에, 날씨까지 박자가 맞는 오늘은 블랙 먼데이. 입동이 혹독하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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