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유연해서 내가 하는 말대로 이리저리 휘어지지만 부러지지는 않는다. 어쩌면 그 놀라운 탄력성을 믿고 아이를 쉬이 생각했나 보다. 나는 미숙한 엄마이다. 엄마는 아이를 위해 강해져야 한다는, 일관된 모습을 보여서 아이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어야 한다는 것은 우리 시대 엄마들의 육아 도그마이다. 나는 매우 불성실한 신도이다. 때때로, 아니 자주 아이 앞에서 무너지고, 변덕을 부린다. 아이 앞에서 참다가 모두가 잠든 밤에 혼자 숨죽여 울지 않는, 이기적인 엄마이다.
엄마의 미숙함이라는 환경에 타고난 성향까지 더해져 아이는 하고픈 말을 꼭꼭 담아둔다. 한아름도 안 되는 작은 가슴 안에서 다듬어진 보석 같은 말들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터져 나온다. 화장실도 생각지 못한 곳 중 하나이다. 아이는 변기에 앉고 나는 문간에 앉는다. 아이가 나를 내려다볼 수 있을 때, 아이는 마음의 문을 연다.
“엄마, 나는 엄마가 아픈 말 하면 여기가 아파.”
다섯 살 난 아이가 손바닥으로 심장이 있는 부분을 누르는데, 내 심장도 조여드는 느낌이었다. 아이는 아주 섬세하다. 평범한 말도 말하는 사람의 억양, 표정, 제스처를 통해 미묘한 느낌을 알아차린다. 실수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아이는 객관적으로 봐도 지적이나 설명을 해주는 것이지, 꾸중을 하는 것이 아님에도 보다 부정적으로, 자책을 하는 편이다. 한 마디도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나를 닮은 것임을 아는데도,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에는 젬병이다.
“엄마가 조금 더 예쁘게 말해주면 좋겠어. 이거 하지 마- 이렇게 말고, 하윤아~이거 하지 말아 줄래~? 이렇게. 그럼 내가 바로 안 하지~”
응가를 하겠다고 배에 힘을 주고 있으면서 문장뿐만 아니라, 억양까지 시범을 보이며 말하는 아이를 보니, 웃음이 나다가 눈물이 났다. 분명 능청스러운 말투인데 그 뒤에 숨겨둔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아서 마음이 아렸다. 아이는 용변을 보는 심각하지 않은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엄마에게 SOS를 보내고 있었다. 나를 조금 더 이해해달라고, 나를 위해 조금 더 노력해달라고. 아이가 용기를 냈으니 나도 이 상황을 심각하게 만들지 않는 것이 배려였다.
“그런데 하윤이가 또 그러면 엄마는 어떻게 말해야 돼~?”
“한번 더 말해줘야지~ 하윤아~이거 하지 말아 줄래~?”
아까보다 더 나긋해진 목소리로 아이가 대사를 읊는다.
“세 번째 또 그러면 어떻게 할까?”
“에이~엄마는. 세 번 째에는 하윤이가 안 그러죠~ “
아이 대답에 화장실 문간에서 일어나서 아이를 안아주었다. 아이는 진심이었다. 배려를 한답시고 장난으로 받아준 나는 머쓱해졌다.
“알았어. 엄마가 노력할게.”
“응, 엄마 까먹으면 내가 또 얘기해줄게.”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 문득 나는 변한 것 없이 여전하다고 느낄 때, 엄마라는 존재가 아이를 힘들게 하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면 아이 얼굴을 한없이 들여다본다. 이유를 몰라 갸우뚱하는 천진무구한 아이의 얼굴에 또 울컥한다.
“하윤아, 엄마가 많이 못 놀아줘서 미안해. 신나게 같이 즐겨주지 못해서 미안해. 그래도 우리 하윤이, 엄마가 정말 사랑한다.”
“엄마, 나는 엄마가 바빠서 잘 못 놀아줘도 괜찮고, 영상 보지 말라고 해도 괜찮아. 목이 아파서 밤에 책 많이 못 읽어줘도 괜찮아. 나는 다 괜찮아.”
신혼 때, 친한 언니들에게 아이를 갖는 것이 무섭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바쁘셨기에 아이와 놀아주는 어른으로 모델링할 기억들이 적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을 보면 어쩔 줄 몰라했고, 좋아하는 게 뭔지, 불편해하는 것이 뭔지 공감할 수가 없었다. 아이가 나를 엄마로 만나 불행해질까 봐 두려웠다. 얘기를 들은 언니가 말했다. 걱정 마. 네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아이가, 너에게로 올 거야.
나도 아이도 서로를 선택하지 않았지만, 어떤 섭리로 서로를 만나게 되었든, 나만 감당하는 인연이 아니었다. 아이가 말을 갓 시작하면서는 작용과 반작용처럼 아이도 나를 감당해내고 있구나 정도를 깨달았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품기에 아이는 너무 깊고, 커서 오히려 아이가 나를 품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엄마는 파도와 바람에 매일 흔들리고 아이는 휘청거리지만 어느새 나를 따라와 앞에 서있다. 나를 일으켜 세우고, 돛을 단다. 내가 부러지지 않게, 바람에 몸을 편히 맡기게. 아이는 한 번도 나를 포기한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