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
“여자애’들’이 나한테 결혼하자고 했어.”
바야흐로 남초 시대. 아이의 반에는 정원이 8명, 이 중 여자 친구가 단 둘이다. 한동안 집에서 아이가 하도 응애응애 하면서 기어 다니길래 퇴행이 왔나 고민했는데 다른 엄마들과 이야기해보니 아들들이 다 집에서 그러고 있더라는 거다. 두 여자 친구가 아기 놀이를 많이 해서 남자아이들이 하나같이 자기가 아기를 하겠다고 경쟁을 한단다. 균형이 무너지면 당연히 한쪽으로 쏠리게 된다. 여자 친구들은 반에서 힘 있는 존재들이었다.
아이는 역할놀이를 주도하는 여자 친구들이 자기에게 아기뿐만 아니라 인기 역할을 잘 맡겨준다고 했다. 아마도 기분을 잘 맞춰주나보다했는데, 결혼이라니, 결혼이라니? 유치원의 권력자’들’이 결혼하자고 했다니 엄마로서 기분이 좋은 건 사실인데, 5살에 이런 이야기를 하나 원래? 결혼에 대해서 설명을 좀 더 해줘야 할 때인가? 개방적이고 모든 걸 수용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남편에게 말해왔지만 고작 다섯 살 난 여자 아이들의 장난에도 나는 시어머니 모드가 되어있었다.
결혼 풍속이 어찌 변할지도 모르는데 다 큰 아들과 드레스를 입었지만, 얼굴은 없는 여자가 나란히 서있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로테스크해진 상상 속 아들의 반려자를 나는 앞으로 더 그려야 할까, 그리지 말아야 할까. 기대를 안 한다면 거짓이지만 그림이 선명해질수록 아들과 멀어질 것 같다.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냐고 물어보면 엄마랑 오래오래 같이 사는 게 꿈이라는 아들의 달콤한 말에 익숙해졌다가는 크게 한 방 맞을 것 같다. 이렇게 몇 번 예방주사를 맞다 보면 진짜 그날이 왔을 때 좀 덜 놀랄까. 준비가 필요하다.
남자가 많아서 걱정인 시대에 동시에 청혼(?)을 받았다니 아이가 뭐라고 답했을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여자 친구 둘 앞에 두고 넌 뭐라고 대답했어?”
“아무 말도 안 했어요.”
그러더니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며,
“으아 나 결혼하는 거 싫은데. 한 명하고만 할 수 있는 건데!”
한 명을 고르기가 곤란해서 아무 말도 안 했다고 한다. 아무 말도 안 하기는 자기 아빠를 쏙 빼닮았다. 대답 없는 남자 둘 때문에 속에서 천불이 나는 날이 많지만 오늘만큼은 잘했다고 칭찬해주었다. 그래, 나도 시간이 필요하다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