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나를 향해 달려온다. 점점 크는 키와 늘어나는 몸무게는 인식하지 못하나 보다. 아장아장 걷던 때 마지막 몇 걸음 남기고 엄마 팔에 쓰러지며 몸을 내 맡기 듯, 온몸을 던져 품으로 들어온다. 그 무게를 달려드는 방향대로 받아주기가 어렵다. 아이를 안으면서 부드럽게 회전해 내 몸이 받을 힘을 반감시킨다. 그렇게 해도 이제는 아이의 드센 힘을 버티지 못하고 몸이 휘청거린다.
온 힘을 다해 달려가 안긴다는 것은 상대방을 그만큼 믿는다는 뜻이다. 이 사람만큼은 나를 버텨줄 수 있다고 의심 한 톨 없이 믿기에 가능하다. 내 인생에서 나에게 이렇게 강렬한 애정과 신뢰를 가지고 달려오는 이가 있었던가. 아이는 나를 시험하지 않고, 스스로는 고민하지 않고 진심으로 달려온다. 아이를 품에 안으면 그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져서 형용할 수 없이 행복하기도 하고, 책임감에 버겁기도 하는 양가의 감정이 든다.
나는 부딪혀 안긴 다음 일일랑 생각도 않고, 온 힘을 다해 달려가 안긴 적이 얼마나 있었을까. 어른이 된다는 것은 상대방이 다칠까 봐 또는 그가 한 발 뒤로 내빼 버릴까 봐 전속력으로 달려가 안길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타인에 대한 완벽한 믿음의 부재를 절감하는 것이다. 아이는 언젠가 엄마가 위태롭게 휘청거리는 걸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전처럼 온전히 기댈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몸이 결승선에 닿기도 전에 힘을 미리 빼버릴 수도 있다. 그렇게 기대 왔던 존재로부터 독립해야 함을 어렴풋이 알게 되리라. 그날 너와 나는 서로를 부둥켜 안고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슬픔을 느끼게 되겠지.
그럼에도 온 마음을, 온몸으로 받아주던 한 사람이 존재했다는 기억을 가지고, 아이가 믿음의 벽에 부딪힐 용기를 가져주면 좋겠다. 그 기억이 조금이라도 짙게 남아있도록 나는 디딤발에 힘을 주고 낮은 자세를 취한다. 어제보다는 덜 하더라도 할 수 있는 만큼 단단하고 포근하게, 달려오는 믿음을 안아주기 위해. 용기를 심어주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