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워서 인사 못할 것 같아.”
고모댁에 인사드리러 가기 전 아이에게 미리 행선지를 일러주었다. 아이는 아주 가끔 보는 외고모 할머니들이 여전히 낯설다. 미리부터 인사를 ’ 못’하기로 마음을 먹었나 보다. 아이 나름대로 엄마에게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예고 방송을 송출해준 것이다.
아이들의 인간관계에는 빈도와 밀도가 중요하다. 호감과는 별개로 자주 보아서 익숙해지거나, 단시간이라도 이 사람과 함께 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 생기면 관계는 좋거나 나쁜, 어느 방향으로든 빠른 물살을 탄다. 명절날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 듯한 조우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아이가 관계를 맺기에 어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아이는 예고에 충실하게 본편을 방송했다. 나와 남편의 품에 번갈아 안겨 고개를 들지 않아서 고모들은 아이 얼굴 보기에 안달이 나셨다. 고모들이 ‘아이고, 얘(나) 어릴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누구 닮아서 그러니-호호호’ 하신다. 답정너의 ‘답’ 일 남편과 눈매를 똑 닮은 아이가 도무지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언뜻 보니 아이 볼이 빨갛게 달아올라있다. 가뜩이나 부끄러워하는 아이에게서 시선을 거두도록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꺼냈다. ‘강아지 털이 참 복슬복슬하네요, 미용은 맡기세요, 아님 직접 하세요?’처럼 고모, 사촌언니와 공감을 일으킬만한 주제를 찾아내는 것은 내 전문이다.
고모들의 말처럼, 나는 내 아이의 나이였을 때부터 사람들에게 스스럼이 없어 보였다. 슈퍼에 들러 인사를 하고 사탕을 하나 얻어먹고, 대문에 서서 짙은 감색 나일론 주머니에 종이팩 우유를 담아줄 배달 아저씨를 기다리고 서있었다. 양말 가게 문간을 괜히 서성이며 예쁜 아르바이트 언니가 무얼 하는지 훔쳐보았다. 생각해보니 사람에게 관심이 많았다기보다 관심을 받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시간이 많았고, 늘 심심했다. 바쁜 엄마 아빠가 부재하는 방은 내게는 너무 컸다. 십장생이 수놓아져 있는 병풍을 길게 펼쳐 놓고도 옆으로 흰 벽이 한참 이어졌다. 이 길쭉한 방에서 나는 혼자 십장생을 따라 그렸다. 해와 달, 사슴, 영지 같은 것들. 그리다 불현듯 긴긴 계단을 내려와 문을 열고 외출을 하는 것이다. 그때는 어린 여자아이가 동네를 돌아다니면 동네 주민 모두가 CCTV가 되어주는 든든한 시절이었다. 아무튼 나는 관심을 받고 싶었고 관계를 맺고 싶었다. 눈을 끄는 외모가 아니었기에 관심을 받도록 꾸밀 만한 것은 내 성격이었다. 스스럼이 없는 게 아니라 스스럼이 없어 ‘보이는’ 아이. 나에게 유리한 것을 성격으로 만들어 내는 영악한 아이. 사람들은 나를 ‘성격 좋은 똑순이’라고 불렀다.
아이의 얼굴은 여전히 빨갛고 남편 목으로, 가슴으로 얼굴을 파묻었다. 이제는 부끄러움을 넘어서 ’절대로 안 보여줄 테다.’하는 근성을 부리는 게 아닐까도 싶다. 어쩌면 나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이런 상황을 여러 번 마주쳤을 나도 아직 준비가 안되었다고, 부끄럽다고 말을 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를 싫어하면 어쩌지, 우리 엄마가 곤란하면 어쩌지.’ 그놈에 ‘어쩌지’ 걱정들이 밀려와 감히 내 아이처럼 하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내게 남은 것은 ‘얘는 어렸을 때 절대로 그러지 않았는데.’라는 평가뿐이다. 그게 나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할머니들이 쥐어주는 용돈도 마다한 채 끝끝내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아이의 곤조가 순수하게 느껴졌다. 용돈은 결국 내가 받아 가방에 챙겼다. 아이는 제 고집도 지켰고, 용돈도 얻어냈다. 느끼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했을 뿐인데 모든 것을 얻어낸 아이가 대단해 보였다. 그래, 이렇게 해도 아무도 떠나지 않는구나.
나는 어릴 적에 스스럼없는 척을 하였기에, 내면 아이는 볼 빨간 아이가 되었다. 나의 아이는 지금 볼 빨간 아이이기에, 내면 아이는 볼 빨간 아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솔직함과 순수함의 미덕이 아이의 볼에서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