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신입사원이 되었다

by 단미

일본에서 대학원을 졸업하던 날. 2년간 요코하마에 정착해 공부만 하던 내게 다음에 가야 할 도쿄라는 도시는 낯설고도 신비한, 어딘지 모를 두려움을 자아내는 곳이었다. 서울보다 약 3.6배가 크고, 1.6배 많은 인구를 지닌 도시. 도쿄'도'안에 또 여러 '시'를 포함하고 있는 곳. 갈 때마다 복잡하여 길을 잃고, 개미떼 같은 사람들에 치여 만신창이가 되어 터덜터덜 돌아오던 곳. 그런 내가 졸업 후에는 도쿄로 가게 된 것이다. 그것도 신입사원이라는 당당한 타이틀과 함께!


졸업을 앞두고 진로를 고민할 때 일본에서 취업활동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2년간 공부를 했지만, 어쩐지 이 나라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동안 내가 속해 있던 곳은 대학원이라는 작은 사회였고, 내 주변 사람들은 교수님이나 동기들을 제외하고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많았다. 논문을 쓰며 힘들었던 설움을 함께 나눌 수 있었던 친구들은 뗄레야 뗄 수 없는 보물 같은 존재들이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아무것도 몰랐다. 일본에 대해서, 일본인에 대해서, 그리고 이 나라의 문화에 대해서도.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이제야 이 나라를 알겠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걸까? 그게 너무나 알고 싶었다. 그래서 좀 더 일본 사회를 경험해봐야 되겠다는 결심을 한 거다. 지금까지 속해 있었던 작은 사회를 떠나 진짜 일본인들만 있는 큰 사회로 나가는 것을 통해서! 마치 우물 안 개구리가 크나큰 깨달음을 얻겠다며 연못을 향해 세상 밖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현지에서 학교를 나왔어도 취업 활동은 쉽지 않았다. 몇날 며칠을 걸려 고치고 또 고쳐 쓴 이력서는 허구한 날 고배를 맛보고 있었다. 일본어가 문제인가 싶어 학교 취업센터의 일본인 멘토들에게 부탁해 첨삭을 받기도 했지만 서류 탈락은 피할 수 없었다. 그 때 당시에 Ai가 있었다면 좀 더 취업 활동이 편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때는 기숙사 방에서 몇 초만에 뚝딱 내 취업 활동을 도와줄 만한 Ai 비서가 없었기 때문에 무식해도 발로 뛸 수밖에 없었다. 기업설명회에 참여하고, 선배들을 만나러 가고, 인턴십에 참여하고, 틈틈이 SPI(일본의 취업시험) 책을 공부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한 인테리어 회사에서 내정을 받았다. 엄청난 속도로 매출 성장을 이룩해내며 전국으로 뻗어나가던 회사였다. 나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는 말에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그래, 그건 인정받았다는 느낌이었다. 이 사회에 내가 더 머물러도 된다는 인정,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존재한다는 인정. 첫 번째 내정과 함께 안도감이 찾아오면서 나는 취업활동에 더 박차를 가했다.


거기서 그만두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직 1지망 기업에 대한 도전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나는 처음부터 콧대높은 취준생이었다. 일본에서 일을 하게 된다면, 어차피 일본 사회를 더 알아야 한다면 좋은 곳에 가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기에 대기업 외에는 서류를 쓰지 않았다. 리스크는 있었지만 이미 내정을 받았으니 남은 취업 활동은 조금 더 내키는 대로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두 번째 내정을 받을 것이라 기대했던 B2B 소재 회사에서는 최종 면접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글로벌 기업들에 첨단 섬유 소재를 제공하며 소위 대박을 터뜨렸던 회사였다. 여기 들어가면 한국과 연관되는 일을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었고, 최종 면접 분위기도 좋았지만 결과는 불합격. 입사하고 싶다는 열망이 커보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 때 나는 더 알려진 기업에 가고 싶었으니까. 즉 B2B보다는 B2C에 가고 싶었던 거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내정을 받은 세 번째 회사. 내가 그렇게도 가고 싶었던 1지망 회사였다. 일본인들도 들어가기 어렵다고 소문이 자자하고, 업계 내 연봉 랭킹이 탑이었던 곳. 무엇보다 인턴십 내내 함께 했던 사원들이 너무 좋아 정말 이 사람들과 일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들게 했던 곳이었다.


기적적인 내정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인터뷰를 7번이나 진행했기 때문이었다. 현장 사원 인터뷰 여러 번, 인사부 인터뷰 여러 번, 마지막 인사부장 인터뷰까지. 아무리 일본어를 할 줄 안다고 해도 그 오랜 시간을 외국어로 자신에 대해 말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 확신이 있었다. 이 회사라면 정말 '나'라는 사람을 제대로 봐주겠다는 확신. 실제로 인터뷰에서 들었던 질문은 '내가 뭘 잘하느냐'가 아닌, '내가 무엇에 관심을 가진 사람인지' 즉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가까운 것들이었다.


최종 인터뷰가 끝나고 이틀 후. 인턴십에서 친하게 지냈던 인사부 분께 전화가 와서 '우리는 당신과 함께 일하고 싶다'는 취지의 말을 들었을 때는 어느새 눈물이 얼굴을 뒤덮고 있었다. 그렇게 바랐던 회사. 그렇게 바랐던 사람들. 드디어 취업 활동이 끝난 거다. 그것도 1지망 회사에 붙음으로써! 그보다 더 감사하고 행복한 일은 없었다.




그렇게 2018년 4월, 도쿄에서 신입사원으로서의 내 첫 커리어가 시작되었다. 너무나 유명하고 전통적인 일본회사와 이질적인 한국인 신입사원이라는 나의 존재. 일본 회사에서 겪었던 소소하면서도 소중했던 그 에피소드들을 하나씩 꺼내보고자 한다.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20대의 찬란한 이야기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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