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이 되는 순간

일본 회사 신입사원 연수에서 깨달은 것

by 단미
우리, 팀 아니야?
그러면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4월 어느 날, 하코네의 한 산 속에서 나는 5명의 동기들에게 눈물 어린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같은 팀이었던 청각 장애 동기를 앞에 두고 모두가 눈물 바다가 되어버린 저녁. 왜 그제야 깨달았을까? 결과만 생각하다 보니 옆에 있었던 동기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는 걸. 소외감 속에서 죄책감에 젖어든 그녀의 괴로운 표정을.


그 순간에 대한 얘기를 하기 전에 배경을 조금 설명하자면, 2018년 4월 입사와 함께 1달간의 신입사원 연수가 시작되었다. 나와 함께 회사에 들어온 동기들은 약 80명. 사무계 40명, 기술계 40명. 한국처럼 전공이나 직무와 관계없이 한꺼번에 뽑아서 나중에 배치하는 게 아니라, 일본은 아예 처음부터 채용을 이렇게 나눠서 진행한다. 사무계는 영업, 기획, 관리 등을, 기술계는 연구개발, 생산기술 등을 담당하게 될 예정이었다. 그 중 어렸을 때부터 일본에서 자란 2명의 중국인을 제외하면, 아예 성인이 되어서 일본으로 건너온 외국인은 나뿐이었다. 내가 그 속에서 얼마나 튀었을지는 상상할 수 있을 거다.




연수 3주째, 우리는 팀 빌딩을 위해 하코네로 2박 3일 워크숍을 떠났다. 도쿄에서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는 이 산간 지역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미션은 간단했다. 주어진 시간 내에 팀별로 과제를 해결하되, 모든 팀원이 함께 완수할 것. 몇십 년 동안 바뀌지 않은 회사의 유서 깊은 프로그램이라고도 했다. 6명이 한 팀이 된 우리 조는 나를 포함해 사무계 4명, 기술계 2명으로 구성되었고, 사무계 중 한 명은 우선 채용을 통해 회사에 들어온 청각 장애인이었다. 그녀는 사람의 입을 통해 말을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그 정확도는 말의 속도나 말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듯했다. 그녀와 소통하기 위해 우리에게는 전자 메모 패드가 하나 주어졌다.


출발 신호가 떨어지고 모든 팀이 일제히 산 속으로 흩어졌다. 프로그램의 룰은 매우 간단했다. 곳곳에 지령이 적힌 종이가 있는데, 그 종이에 쓰인 대로 과제를 수행하고 다시 출발점으로 복귀하는 것. 최대한 빠르게 모든 과제를 수행하고 돌아온 팀이 우승하는 방식이었다. 과제들은 대부분 혼자서는 수행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모두가 손을 양 옆으로 크게 펼치고 손에 손을 잡아 몇 미터의 인간 체인을 만든다거나, 사무계와 기술계가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풀 수 없는 문제의 답을 찾는다거나 하는 식으로.


"빨리, 빨리!" "다음 문제로 가자! 이동해!"

모두가 일사분란하게 이동하고 있을 때, 문득 하나의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빠르게 과제를 수행하는데 집중한 친구들이 청각 장애인 동기에게 더 이상 말을 걸지 않게 된 것. 짧은 시간 내에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는 게 급선무였다보니, 서로 얼굴을 맞대고 천천히 얘기를 진행하며 그녀가 입술을 읽게 하거나 전자 메모 패드를 쓰면서 논의할 여유가 전혀 없었던 탓이다.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우리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급하게 이동하는지도 모르는 채, 그냥 친구들이 뛰면 뛰고, 뭔가를 하고 있을 땐 옆에서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말할 수가 없었다. 과제 수행에 혈안이 된 동기들을 막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굳이 말하자면 나 또한 외국인에다 동기들을 이끌어나가는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빠르게 팀의 눈치를 살피고 해야 할 일에 협력하는데 급급했다. 결국 우리는 발이 빠른 다른 동기들을 이기지 못하고 순위권 외로 골인하고 말았다.


그날 저녁, 인사부 사람들이 마련해준 회고 시간. 더 이렇게 해보았으면 좋았을 것 같다, 여기를 이런 식으로 접근했으면 더 좋은 결과를 냈을 것 같다는 '결과'에 대한 피드백을 주고받는 동기들 사이에서 나는 위화감을 느꼈다. 1달간의 신입사원 연수라는 특수 상황, 하코네라는 낯선 동네까지 와서 팀이 되었는데 우리가 돌아볼 것이 '결과'밖에 없다고? 어떻게 보면 나는 외국인이었고, 동기들 사이에서도 특수한 존재였기 때문에 그날의 활동에서 나 또한 소외감을 느낀 바였다. 나와 청각 장애인 동기가 소속되어 있는 우리 팀은 처음부터 '결과 수행'이라는 관점에서만 보자면 핸디캡이 있었다. 핸디캡이 있다는 건 분명 다른 팀보다 더 많은 배려가 요구되기에, 결과를 만들어내는 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은 우리가 더 특별한 팀이 될 수 있었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래서 눈물 어린 그 질문이 나온 거다.

"우리, 팀 아니야? 그러면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너희가 결과만 생각하고 빠르게 뛰어다니던 때 M쨩은 뭐가 뭔지도 모르고 계속 따라만 다녔어. 적어도 뭘 어떻게 할 것인지, 각자가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그 때 그 때 논의해야 하는 거 아니었을까?"


내 질문을 시작으로 '스스로가 아무 도움도 안 되는 것 같아서 너무 미안했다'는 청각 장애인 친구의 고백이 이어졌고, 모두가 순식간에 눈물 바다가 되었다. 팀원이 스스로를 짐짝처럼 느낀 그 마음이 얼마나 괴롭고 미안했던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그 다음날부터 우리는 다시 시작했다. 팀 과제에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그 친구가 이해할 수 있도록 천천히 소통하고, 메모 패드를 활용해 다 함께 논의했다. 과제 완성은 다른 팀보다 늦었을지 몰라도, 이제야 진짜 하나의 팀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누구보다 빠르게, 완벽하게 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구 하나 낙오시키지 않고 함께 끝낼 수 있는 것이 때로는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 결과도 중요하지만 오래 가는 팀을 만드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 일본 회사에서 배운 첫 번째 교훈이었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의 회사 생활에서 문득 스스로를 돌아볼 때 이 질문을 던지고는 한다. "지금 우리는 정말 팀인가?"하고. 하코네 산 속에서 배운 건 일본어도, 성과 달성의 특별한 방법도 아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짜 거리를 재는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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