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인정받는 법
또 놓쳤다. 부장들의 빠른 일본어와 전문용어 사이에서 나는 미팅록 한 장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었다. 해외식품부 첫 신입사원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과연 내가 여기서 해낼 수 있을까? 빈 화면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던 그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신입사원 연수 후 첫 배속이 해외식품부로 정해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부담감은 시작되었다. 해외식품부에 신입사원이 배속되는 것은 그때까지 유례가 없었던 일이었다. 그것도 외국인 신입사원이라니.
회사 전체 매출의 무려 50%를 담당하는 해외 식품 사업을 총괄적으로 관리하는 해외식품부는 그 중요도는 말할 것도 없고, 소수정예로 운영되어 회사의 엘리트 중의 엘리트만 모아놓은 집단이었다. 보통 국내의 영업이나 연구소 조직에서 뛰어난 성과를 내고 나면 해외식품부로 와서 짧으면 6개월, 길면 1년 반 정도를 일하며 해외식품 사업에 대해 이해하고 난 이후 외국으로 주재원으로 발령나는 게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으니 그 자리의 무게감이 어느 정도였는지 상상할 수 있을 거다. 심지어 젊은 선배들과의 교류회에 가면 "쟤가 그 해외식품부의 신입이야?"라는 말을 듣기도 할 정도로 본사 근무자들 사이에 가벼운 소문이 돌고 있었다.
글로벌한 일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언젠가는 해외식품부에서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연수가 종료되기 전 인사 면담에서도 그 의사를 넌지시 전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영업 혹은 영업 지원 쪽으로 보내질 줄 알았다. 보수적인 일본 제조업들은 보통 몇 년간 신입사원을 영업에 보내 현장을 경험하게 하고, 그 후 마케팅이나 홍보 같은 주요 부서로 옮겨주는 게 일반적인 관행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초장부터 해외식품부라니.
긴장한 얼굴로 회의실 의자에 앉아 있는 내게 해외식품부의 본부장님은 첫 미팅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이제 우리 부서를 변화시키기 위해 젊은 사원들을 더 많이 받아들일 거야. 그때 단미가 신입으로서 모범을 보여서 그들 또한 겸손하게 부서에서 잘 생활할 수 있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그제서야 부서에 변화를 일으키고 싶으셨던 본부장님의 의도가 보이는 듯했다. 그가 원하는 건 조직을 보다 젊고 애자일하게 변화시키는 것이었고, 그 과정에 나라는 이질적인 존재를 투입시킴으로써 기존 멤버들과 새로운 멤버들의 밸런스를 잡고자 한 것이었다. 나는 그 누구보다 새로웠지만, 기존에 학습한 업무 환경이나 태도는 제로였기에 그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존재였던 것.
그래서 나는 이 부서에서 그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야겠다고 다짐했다. 기꺼이 나를 해외식품부에 추천해준 인사부 분들께도, 나를 믿고 그 기회를 맡겨주신 해외식품부 분들께도 누가 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도 이후에도 신입사원이 계속 들어오는 부서를 만들기 위해서는 내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외국인이 없는 곳이었기 때문에 한국인으로서도 이미지를 망쳐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나 나름으로는 스스로를 '민간외교관'이라 생각했다. 향후에 더 많은 외국인, 특히 한국인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책임감을 가져야겠다고.
기세등등한 다짐과는 달리, 현실의 벽은 매우 높았다. 국내에서 성과를 냈던 엘리트들이 모여 있는 집단이라는 것은 결국 그들이 스스로의 일을 찾아서 해낼 수 있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즉 모든 일이 정해져 있지 않고 개인의 역량에 따라서 달리 돌아가는 것. 그 말인 즉슨 신입사원인 나에게 주어질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음을 의미했다. 선배들이 글로벌 전략을 수립하고 해외 법인들의 사업을 추진할 때, 나는 그들의 업무를 지원하거나 부장들의 미팅에 들어가 미팅록을 작성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회사에서 가장 화려한 부서의 가장 아래에 속하는 사람의 일이란 응당 그런 것이었다.
심지어 미팅록을 작성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들의 일본어가 너무 빨랐고, 전문 용어가 남발되는 과정에서 내용의 흐름을 따라가기도 벅찼다. 대학원에서 자주 사용했던 단어는 쓰이지도 않았고, 또박또박 명확한 발음으로 설명해주셨던 교수님들과는 달리 실제 긴박한 비즈니스 상황에서 부장들이 사용하는 일본어는 발음이 뭉개지고, 각종 약어에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표현들이 많아 내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쏜살같이 오고가는 말들 사이에서 핵심을 놓치기 일쑤였고, 그걸 정리해서 문서로 작성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웠다. 내가 지금 신입사원으로서, 모범적으로 일을 하고 있는 게 맞나? 민망한 마음에 얼굴이 붉어질 정도였다. 내게 주어진 자리의 무거움과는 별개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었던 거다.
그렇다고 해서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으니 그 벽을 넘어야만 했다. 나는 스스로에 대한 높은 기대를 버리는 것부터 시작했다. 모든 것을 알아듣는 것? 불가능했다. 그러면 알아듣지 못하는 것부터 정리하기로 했다. 부장들이 주로 쓰는 키워드를 하나하나 정리했다. 해외 법인의 이름, 공장 이름, 나라별 제품명, 경쟁사 및 경쟁 제품 이름 등만 해도 백 개가 족히 넘었다. 거기다 제조업에서 잘 쓰이는 일본어 단어를 익히기 위해 해외식품부의 옛 선배들이 남겨놓고 간 서류들을 참 많이 읽어 보았다. 제품을 만드는 과정 안에서도 들어본 적도 없는 단어가 많이 쓰이고 있었다. 그걸 하나하나 엑셀 파일로 정리하고 뜻을 적어 익히고자 했다. 그렇게 하고 나니 미팅 중 던져지는 중요한 키워드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 키워드를 중심으로 대화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습관이 잡혔다. 작은 것부터 시작하니 전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 거다.
그리고 또 하나, 주어진 일과는 별개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선배들처럼 '보이지 않는' 멋진 일을 찾아서 할 수는 없었지만, 모두가 함께 일하는 공간을 깨끗하게 만드는 것 같은 '보이는' 일은 할 수 있었다. 주재원들이 왔다갔다 하는 부서다 보니 복사실에 그들이 남기고 간 잡동사니가 가득했고, 플로어 청소는 저녁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오후 시간대에는 사람들이 문서 분쇄기를 쓰고 난 이후에 떨어지는 종이 부스러기들이 발밑 여기저기에 떨어져 있었다. 할 수 있는 일부터 하자는 마음으로 솔선수범해서 잡동사니들을 정리해서 자리를 정해두고, 보일 때마다 종이 부스러기들을 돌돌이로 청소해 두었다. 누가 시키지 않은 일이었지만, 함께 사용하는 사람들이 조금 더 쾌적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아직 언어나 전문성에서는 부족할지 몰라도, 적어도 이런 부분에서만큼은 내가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키워드 정리 습관 덕분에 미팅록의 질이 조금씩 나아졌고, 부장님도 그 변화를 알아차리셨다. 그리고 내가 했던 작은 정리와 청소들이 생각보다 더 큰 인정으로 이어졌다.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 모습을 봐주었던 거다. "단미는 정말 세심하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는 본부장님의 평가로부터 시작해서, 다른 직원분들로부터도 "일을 믿고 맡길 수 있다"는 말을 듣기 시작했다. 큰 일이 아니더라도, 사소한 부분들을 소중히 여기고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신뢰가 쌓인다는 걸 배운 순간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드디어 그 순간이 왔다.
"이 미팅록, 우리 신입사원이 만들었는데 굉장하지 않아? 그것도 외국인이 말이야."
본부장님이 다른 부서 사람들에게 내가 작성한 미팅록을 보여주며 자랑하시는 게 아닌가. 몇 개월 전 빈 화면을 바라보며 한숨 쉬던 그 순간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해외식품부 첫 외국인 신입사원이라는 타이틀의 부담감은 컸지만, 결국 그 부담을 극복하는 방법은 거창한 게 아니었다.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일들부터 성실하게 해나가는 것. 완벽하지 않아도 조금씩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보여주는 진정성이 결국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을 배웠다.
핸디캡이나 부담감은 핑계가 될 수도 있지만, 그것을 뛰어넘으려는 작은 실천들이 모여 나만의 경쟁력이 되는 것이다. 민간외교관으로서의 역할도, 모범적인 신입사원으로서의 모습도, 결국은 이런 일상의 작은 것들에서 시작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