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사람이 처음 만들어준 떡볶이

남자친구가 만들어준 첫 한국 음식

by 청두유

코로나 전부터 그랬지만 코로나 때문에 생겼다고 핑계를 대며 오래된 버릇에 당당해져 보려 한다. 버릇 이라기보다 이제는 일상에 가깝다. 먹으면서 다음 먹을 거 생각하기. 아침을 먹으며 점심에 뭐 먹을지 생각하고, 점심을 먹으며 저녁에는 뭐 먹을지 생각하고, 저녁을 먹으며 다음날은 뭐 먹을지 생각한다.


무엇을 먹을지가 너무도 중요한 삶이 되었다. 아마도 코로나 때문이다. (라고 주장해본다.)

코로나로 다른 즐거움이 없어서 요리와 식사에 빠져 있는 요린이에게 메뉴 고민은 그 어떤 일보다 더 즐거우면서도, 욕구를 알아차리는 기민함, 있는 재료를 조합해보는 적용력, 정하고 나서 뒤돌아 보지 않는 단호함 등 여러 소양을 갖춰야 하는 일이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점심을 먹고 나른하게 소파에 앉아 있었다. 살짝 몸살 기운이 도는 것이 마음의 보양식이 필요한 시점임을 느꼈다. 소울 푸드 중 하나인 떡볶이가 좋을 것 같았다.

"저녁 메뉴를 생각했어! 떡볶이를 해 먹을 거야!"라고 말하자 그는 좋다고 찬성하며 한 가지 흥미로운 제안을 했다.


“레시피를 적어주면 그거 보고 내가 만들어 볼게. 어때? 그냥 여기 누워서 쉬고 있어.”


한 번도 떡볶이를 먹어본 적 없는 남자친구가 과연 제대로 만들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오늘은 맛있는 걸 먹고 싶은 그런 날인데.. 그가 주로 사용하던 재료들과 다른 재료들을 써야 하기에 찬장을 열고 한참 헤맬 것만 같았다. 같이 내려가서 재료라도 챙겨주려는 나에게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할 수 있어! 나 못 믿어? 한번 믿어봐.” 재료와 순서를 적어서 메신저로 보내주고 마지막에 당부의 한 마디를 남겼다.


P. S. 떡에 양념이 배어 들어갈 때까지, 국물이 걸쭉해질 때까지 푹 익힐 것


한 시간 즈음 지나니 배가 고파서 식은땀이 나고 경련이 이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그는 감감무소식이었다. 혹시 떡볶이를 만들고 있다는 걸 까먹고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언제 되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난생처음 떡볶이라는 본 적도, 먹어본 적도 없는 음식과 씨름하고 있을 그를 보채고 싶지 않아서 힘 없이 떨리는 손을 꼭 쥐고 기다렸다. 드디어 떡볶이가 방으로 들어왔다.

배고픔에 지쳐 격하게 환영해주지 못한 채 목소리를 쥐어 짜내어 수고했다고 말해주었다.


그런데 그가 가지고 온 물건이 이상했다.

떡은 사정없이 퍼져서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었고, 국물은 한없이 묽고 탁했다. 레시피대로 고춧가루를 6스푼 넣었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색깔이었다. 그래도 그가 처음으로 만든 한국 음식이니 맛있게 먹어주고 싶어 한입 떠 넣었다. 떡이 죽기 직전까지 불어 터져 있어서 씹을 필요도 없었다. 묽은 색깔과 달리 국물이 너무 매워서 입에서 불이 나는 것만 같았다. 먹다가 목에 잘못 걸리면 눈까지 매워서 눈물을 쏟을 각이었다. 엄마가 보내준 고춧가루는 청양 고춧가루가 아니라 맵지 않은데, 이 음식은 왜 이렇게 매운 건지 이유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썰어 넣으라고 한 고추도 매운맛 전혀 없이 물기 가득한 오이 고추였는데, 도대체 이 매운맛은 어디서 나온 걸까 하는 의문이 점점 커졌다. 혹시 오이 고추 대신 쥐똥 고추를 넣은 것 아니냐고 물어봤는데 아니라고 했다. 뭔가 이상했지만 그렇다고 또 못 먹을 맛은 아니어서 먹던 도중 문제를 알아차렸다.


겉보기에 엄청 이상하다고 말하기는 또 애매한 비주얼...?

그는 테이블 스푼을 티스푼으로 잘못 봤던 것이었다. 고춧가루를 티스푼으로 6스푼 넣고 나서 국물이 왜 이렇게 연하지?라고 생각했지만 레시피를 맹신했다고 한다. 그렇게 조금 넣었는데 왜 이렇게 매웠을까? 매운맛의 정체는 페페론치노였다. 그는 냉장고에 있던 고춧가루 대신 페페론치노 가루를 넣었고, 그래서 보기와 다르게 목구멍을 태울 듯이 매웠던 것이었다.

첫 단추를 잘못 꼈더니 모든 게 조금씩 어그러졌다. 고춧가루, 고추장이 거의 1/4만큼 밖에 들어가지 않았으니 아무리 끓여도 마지막 당부 사항처럼 국물이 되직해지지 않았다. 이유를 알 턱이 없는 그는 국물이 왜 이렇게 안 줄어들지 고민하며 떡볶이를 사골 우려내듯 끓이며 부엌에서 한 시간 동안 벌을 섰다.


뭐로 보나 문제 있음이 분명한데 왜 말을 안했냐는 그의 말에 그래도 남자친구가 처음으로 만든 한국 음식인데 맛있게 먹어주고 싶었다고 대답했다. 억지로 연기를 한 것은 아니었다. 재료 간의 비율은 맞았기에 차마 못 삼킬 정도로 괴상한 맛은 아니어서 맛있어! 괜찮아!라고 말하며 씹어 삼킬 수 있었다. 다행히 대화를 하면서 범인은 찾았다. 범인은 티스푼과 페페론치노. 이제 알았으니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진 않을 거라며 음식을 비웠다.


터키 사람과 한국 사람. 우리 커플의 일상은 매 순간 문화의 요충지가 된다. 익숙하지 않은 문화,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과정은 기본이요 식습관을 새로 알아가는 경험도 국제 커플에게는 필수적이다. 서로가 원할 때 고향의 음식을 해줄 수 있는 동반자가 되고 싶어서 낯선 식재료를 사용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가 떡볶이를 잘 만들고, 내가 토마토 수프를 잘 끊이는 그날. 우리는 서로를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러다가 두 문화가 뒤섞인 놀라운 음식이 새롭게 탄생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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