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그다음, 우리는 어디로 가게 될까?

석사 이후 목적지 고민하기

by 청두유

남자친구와 교제를 시작한 지 2주도 지나지 않은 무렵, 함께할 시간이 한정적으로 석사 기간인 1년뿐이라는 사실이 조금 슬프다는 말을 했다. 그는 우리가 학생도 아니고 어느 한 지역에 묶여 있을 필요도 없는데 왜 벌써부터 1년밖에 없다고 생각하냐고 물었다. 그때는 희망찬 메시지로 내 걱정을 잠재웠던 그였지만 내심 사귄 지 얼마 되지도 않아 1년 뒤 미래까지 생각하는 나의 지나친 선지적 상상력에 놀랐다고 한다.


함께 보내는 시간들이 서로에게 확신을 가져다준 후부터는 1년 후 미래에 대해 종종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에게는 크게 세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각자의 나라인 터키나 한국으로 돌아가거나 이곳 영국에 머무는 것이었다. 마음은 시시때때로 달랐다. 어느 날은 느리고 여유로운 삶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 영국에 있고 싶었다. 부유한 사람이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삶들이 영국에는 자리 잡고 있었다. 집 바로 옆에 위치한 수풀이 우거진 Heaton Park를 산책하다 보면 이런 공원을 옆에 두고 여유롭게 조깅이나 피크닉을 하는 삶을 놓치기 싫었다. 그러다가도 길에서 “칭총 칭총”하며 시비 거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을 만난 날이나 길에서 빈번히 마주하는 싸움 현장을 볼 때면 그래도 한국이 제일 안전하겠구나 싶었다. 또 어느 날은 현실적으로 가장 안정적이고 편안하게 시작할 수 있는 터키가 정답이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어차피 때가 되면 선택을 해야 하기에 심사숙고하면서도 결정은 뒤로 미뤄두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여태까지 생각했던 미래와 전혀 다른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는 점이었다. 영국에 와서 터키 남자친구를 만날 거라고는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대학에 가고 취업 준비를 하고 회사를 다니며 이제 더 이상 인생에 예기치 못한 일들, 전혀 다른 일들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끝이 안 보이는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 들었다.


태생부터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뭐든 최악의 경우의 수까지 하나하나 곱씹어 보는 나는 남자친구와의 대화에서도 "What if.."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모든 선택 뒤에는 수없이 많은 가능성들이 있기에 그 모든 가능성을 What if로 시작하는 문장으로 하나씩 내뱉어 보고 상상해보았다. 이렇게 피곤하게 머리를 굴리며 사는 덕에 결정을 하기까지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결정에 믿음이 생겼다. 희망차고 밝기만 한 미래가 우리 앞에 펼쳐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시련과 고통이 있어도 우리 둘이 함께라면 전혀 문제없다고 안일하게 널브러져 있겠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우리는 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서로의 최선을 이야기하고 나누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살 곳이 어디든 힘든 순간들은 찾아오겠지만 같이 이겨낼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이런 우리의 전투력, 꽤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에는 늘 어딘지 모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은 늘 이방인처럼 살며, 애타게 고향을 찾아 헤맨다. 영국에 오기 전, 나는 영국이 내 마음의 고향일 것이라고 믿었다. 영국에만 오면 그동안 한국에서 느꼈던 답답함에서 벗어나 안락함과 행복을 느끼리라 상상했었다. 그토록 그리던 영국에서의 1년을 보낸 후, 내 결론은 세상에 유토피아는 없다는 것이다. 아직 모든 나라, 모든 도시에 가본 것은 아니므로 단언할 수는 없으나, 어디에나 장단점이 있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지금 최선인 곳을 선택할 뿐, 그 이후에 안락함과 행복을 찾는 것은 우리 자신들의 몫이다.


그 어디에도 완벽한 이상향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달과 6펜스’에 나오는 구절을 마음에 새기며 마음의 고향을 만들어갈 그 어딘가를 찾는 여정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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