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는 영어 공부는 안 하고 터키어 공부?

by 청두유

영어, 중국어 그리고 스페인어. 언어에 대한 욕심으로 그동안 이 언어 저 언어 기웃거렸다. 할 줄 알았던 중국어도 퇴보하는 마당에 더 이상 새로운 언어를 탐내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런 내가 영국에서 학교 석사 수업보다 터키어 수업을 더 열심히 듣고 있다.

터키 남자친구를 만나고 있으니 당연히 터키어를 배우게 될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영어로 의사소통하기 때문에 터키어나 한국어를 쓸 일이 없었다. 하지만 서로의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다 보니 자연스럽게 언어 공부도 시작하게 되었다.



터키어 공부를 시작한 가장 큰 이유는 언어를 알면 마음을 더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을 것만 같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I love you라는 말보다 사랑한다는 말이, I miss you 보다 보고 싶다는 말이 더 와닿듯 그에게도 해석의 열차를 탈 필요 없이 마음으로 직진하는 말을 전달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상대방을 더 많이 이해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실제로 언어는 그 나라의 특징을 오롯이 담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는 반말과 존댓말이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다. 영어에서 sister, brother는 관계를 나타낼 뿐 호칭으로 쓰이지 않는 반면 우리나라는 나이가 많은 상대를 이름 대신 누나, 언니, 오빠, 형 등 성별에 따라 다른 호칭으로 부른다. 여기서 나이를 중요시하는 문화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터키어도 나이가 많은 상대를 이름 대신 Abi(오빠나 형), Abla(언니나 누나)로 부르는 공통점이 있다. 모든 친척을 Aunt와 Uncle로 퉁치는 영어와 다르게, 관계에 따른 다양한 호칭이 있다는 점에서도 우리나라만큼 이나 터키도 가족을 중시하는 문화라는 것을 엿볼 수 있다.



또 다른 이유는 남자친구의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이다. 남자친구가 영어-터키어를 통역해주지만 그래도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부모님을 비롯한 어르신들께 영어는 문법으로 배워서 머리로는 알지만 입 밖으로 내뱉기 힘든 언어이다. 그나마 알던 것도 가물가물해서 기억해내는데 시간이 걸린다. 아이가 언어를 배우듯 낱말을 던지며 말해보기에는 또 부끄러워서 완벽한 문장을 구사하기 전까지 입이 꾹 다물어지는 마음의 짐 같은 언어일 것이다.


남자친구의 어머니와 video call로 인사를 하는데 수줍게 “Merhaba!(안녕하세요?) Nasilsin?(어떻게 지내셨어요?)”라는 말을 하면서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영어나 중국어는 이미 설렘은 지난 언어였는데, 터키어를 하니 새롭게 누군가와 소통하는 그 느낌이 짜릿했다. 언어와 썸 타는 듯한 기분, 이 느낌이 좋아서 늘 새로운 언어를 갈망했던 기억이 났다.


먼 동쪽나라에서 온 여자친구가 수줍게 터키어를 이야기하는 게 마냥 신기하고 예뻐 보이셨는지, 터키어를 할 때마다 너무 예쁘다고 칭찬을 반복하셨다. 부모님께서도 나와의 의사소통을 위해 새로 영어 과외를 시작하셨다는 말을 들었다. 통역으로 전달되는 이야기들도 좋지만, 서로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서 애쓰는 시간이 따뜻하고 소중해서 터키어 공부에 더 열심이다.


희망적인 요소 한 가지는 터키어는 한국어와 같은 우랄 알타이어 계통이며, 어순이 동일해서 다른 언어에 비해 학습이 수월하다는 점이다. 게다가 영어와 유사한 라틴알파벳을 사용하니 예외 글자 몇 개만 공부하면 바로 소리 내어 읽을 수 있다. 생전 처음 보는, 그림 같이 느껴지는 한글을 익히고 있는 남자친구와 비교했을 때 훨씬 앞선 출발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영어 공부한다고 영국에 와서 터키어를 공부하고 있으니, 원래 하라는 공부 안 하고 딴 거 할 때 제일 재밌는 건 10대가 지나도, 20대가 지나도 변함없는 듯하다. 예기치 않게 시작된 이 공부가 나를 어디로 이끌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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