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머스에 우리의 꿈을 두고 왔다

by 청두유

영국 생활의 대부분은 과제로 정신이 없었고 남자친구는 일하느라 건강을 챙기지 못해 유난히 자주 아팠다. 하루는 감기였다가 하루는 위염이었다가 또 다른 날은 알레르기로 온종일 재채기하며 콧물을 훌쩍거렸다.

집 근처 마트에 갈 여유도 없는 나날들이 이어지다 보니 도시락을 싸서 피크닉 가자는 이야기를 하고 2주 넘게 시간을 정하지 못했다. 더 미루면 한 없이 뒤로 밀리다가 흐지부지될 계획 같았다.

“우리 무슨 일이 있어도 내일은 꼭 타인머스로 피크닉 가자.”


양 어깨에 가득한 피곤함을 눈곱 떼어 내듯 애써 털어내며 피크닉 준비를 했다. 봄이 왔지만 여전히 바람이 차고 시린 이곳에서는 외출할 때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다. 게다가 바닷가를 따라 걷고 앉아서 밥을 먹다 보면 더 추울 게 뻔했다. 김밥은 추울 때 먹으면 쉽게 체하는 음식이다. 찬 공기에 잔뜩 긴장해서 움츠러든 위장을 따뜻하게 달래 가며 김밥을 먹어야 했다. 보온병과 컵, 그리고 티백을 챙겨 넣었다. 종이컵을 준비하면 자칫 등산객 기분이 날까 싶어 굳이 머그컵을 넣었다.


타인머스 아침 @Reina Sun

타인머스(Tynemouth)는 북잉글랜드 Tyne and Wear지역에 위치한 해안 도시로 영어 표현 그대로 타인 강의 입, 강물이 바다로 나가는 곳이다. 지리적 위치로 인해 해안 지역의 요새이자 타인 강 전체를 방어하기 위한 타인머스 성도 위치해 있다. 뉴캐슬 도심에서 타인머스까지는 지하철로 30분이면 도착한다.



이곳은 우리의 캐주얼했던 첫 데이트 장소이기도 해서 더 의미가 깊다. 첫 만남 때에도, 꾸준히 만나고 있는 지금도 우리는 이곳에 올 때마다 부러움을 한가득 쏟아내곤 했다. 매일 넓게 펼쳐진 해안선을 따라서 조깅도 할 수 있고 해변가에서 친구들과 뛰어놀 수 있는 학창 시절이 부러웠다. 아무런 걱정 없이 느리고 여유롭게 사는 사람들의 삶이 빛나 보였다.

“좋아 보이는 삶”, “부러운 삶”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이곳에 사는 어떤 사람들은 조용하고 아무 일 일어나지 않는 삶에 염증을 느끼고 다른 도시를 궁금해하고 부러워하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가끔 지겹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 세상이 내가 아는 세상이고 편하고 좋다고 하며 만족할 것이다.

누군가는 어디에 살든 세상 살이 다 비슷하다고 하며, 어딜 가나 부러워하는 사람은 부러워하고, 불만인 사람은 불평불만을 늘어놓는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부러움에도 순기능이 있다. 가지지 못한 것을 시기, 질투하며 우리를 갉아먹지는 말되, 언젠가 이루고 싶은 목표 정도로 꿈꾸는 것은 마음을 환기시켜 준다.


타인머스 해변 따라 걷기 @Reina Sun
바다 보이는 집 @Reina Sun

우리는 해변가를 따라 걸으며 나중에 돈을 많이 벌면 여기 타인머스에 바다가 보이는 집을 사자고 약속했다. 그 약속은 우리의 캐주얼했던 첫 데이트 때 그가 말해준 로망이기도 했다. 해안이 보이는 발코니가 있는 꼭대기층 집을 꼭 살 거라고 확신에 차서 말하는 그를 보며, 외국에서 무언가를 소유하는 꿈, 뿌리내리는 꿈을 꾸고 있는 그가 신기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한국에 돌아가지 않는다는 선택지를 신중하게 생각해보지 못했기에 그랬던 것 같다. 그는 끝에 보이는, 심지어 다락방도 딸린 집을 사서, 매주 주말에 보트를 타거나 서핑을 하며 지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때 해변가에는 서핑 보드를 들고 바다를 향해 나서는 지역 주민들이 보였다.

꿈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반짝인다. 듣는 사람까지 기분 좋게 만드는 그 상상 속으로 그의 손을 잡고 같이 끌려 들어간다. 이 조용하고 느긋한 도시에 나를 뿌리내리고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싶다는 꿈을 덩달아 꿔 본다.


이 도시를 보고 남자친구의 동생은 "이런 삶이 있는 걸 알고 나니, 우리는 사는 게 아닌 것 같아. 우리는 죽은 사람들이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고개를 끄덕이려던 찰나, 나만의 대답을 해본다. "아니야. 지금의 우리도 행복해. 하지만 미래를 꿈꾸는 우리도 행복해. 지금도 살고 미래도 꿈꾸고 과거도 추억하면서 살아보자."

타인머스, 그곳에 살아 숨 쉬는 꿈 하나를 놓아두고 왔다.


바다 그리고 삶 @Reina 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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