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에 위치한 오르타쿄이(Ortaköy). 탁심처럼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핫한 거리도 아니고 아야 소피아, 블루 모스크와 같은 유명한 관광 명소가 위치한 곳도 아닌 이곳에 방문했다. 이유는 단 하나, 쿰피르(Kumpir)를 먹기 위해서다.
쿰피르는 거창한 음식이라기보단 구운 감자를 활용한 길거리 음식이다. 줄지어 늘어선 쿰피르 가게들 중에 한 곳을 골라 쿰피르를 주문하면 아저씨는 오븐에 구운, 두 주먹을 합친 크기보다도 큰 감자를 꺼내서 버터와 카샤르 치즈를 넣고 비벼준다. 뜨거운 감자 위에서 무력하게 녹아내린 버터와 치즈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사라져서 부드러운 감자로 재탄생한다. 가판대 위에 진열되어 있는 토핑들 중 원하는 토핑과 소스를 고르면 한 숟갈, 두 숟갈 아낌없이 올려준다. 올리브, 버섯, 할라피뇨, 불거 라이스(Bulgur, 밀을 쪄서 말린 후, 쌀알처럼 만든 식재료), 파 등 좋아하는 토핑이 수북하게 쌓인 감자와 탄산음료 한 병을 들고 몇 걸음 걸어가면 해변이 보인다. 벤치에 앉아도 되고 난간 앞에 앉아도 좋다. 탑처럼 쌓아 올린 토핑을 비빔밥 먹듯 다 섞어서 먹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토핑과 감자를 적당히 숟가락으로 떠가며 먹는다. 뜨거운 태양 아래 눈부시게 쪼개지고 부서지는 바닷물을 바라보면서.
오르타쿄이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 이 쿰피르 아니면 와플을 먹기 위해 오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굳이 이곳에 와서 이 음식을 먹으며 바다를 바라보는 낭만을 즐기기 위해서 말이다. 이 지역은 특별히 쿰피르가 유명하지만 이스탄불 사람들은 바닷가에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며 차도 마시고 옥수수도 먹고 시밋이라고 하는 빵도 사서 먹는다. 바다를 보며 무언가를 먹는다는 것은 낭만적인 일이지만, 이곳에서는 또 흔한 일이다.
도시 가운데에 바닷길이 다니는 이스탄불은 바다와 함께 살아가는 도시이다. 도시 중앙을 바닷길이 가르고 지나가고 여행자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 모든 곳에 바다가 있다. 실제로 아시아 지구와 유럽 지구를 오가는 페리가 마을버스처럼 운영되기 때문에 이 사람들에게 페리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것은 일상에 가깝다. 처음 페리를 탔을 때, 한강 유람선을 떠올리고는 부둣가를 향해 "안녕~" 손을 흔들었다. 아무도 손을 흔들어주지 않았다. "터키 사람들 친절하다고 들었는데, 야박하네? 왜 아무도 손을 흔들어주지 않는 거야?" 그러자 남자친구가 말했다. "정류장도 곳곳에 있고 정류장마다 페리가 한 시간에 한 대씩 움직이는데 그럼 여기 사람들은 계속 손만 흔들고 있어야 해." 마을버스 지나가는데 손 안 흔들어주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될 뻔했다.
너무 흔하게 오고 가는 배에 손은 흔들어주지 못하지만, 이스탄불에서 음식은 바다를 보며 먹어 보자. 굳이 쿰피르가 아니어도 좋다. 레스토랑에 앉아서 해산물을 먹으며 바라보는 바닷가도 멋있을 테지만, 가끔은 길거리 음식 하나 사서 바닷가 근처 벤치에 앉든 바닥에 털썩 주저앉든 바다를 바라보며 먹는 음식은 간이 잘 된 음식 마냥 맛도, 멋도 좋다.
굳이 여행이 아니더라도 살면서 어떤 장면들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 한 장처럼 박제되어 머리에 떠돈다. 바닷가에 털썩 앉아서 수북이 쌓인 토핑이 쏟아지지 않게 조심조심 쿰피르를 떠먹던 그 장면이 계속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날씨와 바다와 우리 그리고 쿰피르. 온도, 냄새, 촉감 그리고 맛. 모든 게 완벽한 여행의 기억이다.
Photo by Rei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