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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두유 Dec 17. 2021

터키에서는 발코니에서 아침을

영국에서의 일상은 매일 아침 졸린 눈을 반쯤 뜨고 1층으로 내려가 뒤뜰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시작했다. 뒷문을 여는 순간 라디에이터로 밤새 데워진 집 안 공기가 밖으로 훅 꺼지며 아침 공기가 쌀쌀하게 온몸을 감싸곤 했다. 뉴캐슬은 잉글랜드 북쪽에 위치하여 여름에도 아침저녁으로는 꽤 쌀쌀했다. 게다가 안개 낀 듯 둥둥 떠다니는 물 입자들 덕분에 늘 실제 온도보다 더 춥게 느껴졌다. 따뜻한 카페인이 위장을 데우고 차가운 공기가 몸 전체를 흔들어 깨웠다. 매일 아침 우리를 깨우는 차갑고 뜨거운 대조의 마법이었다.

깔끔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우리의 아침을 책임져 주었던 영국의 백야드:)


영국에 앞뜰, 뒤뜰이 있다면 터키에는 발코니가 있다. 벽과 창문으로 막혀 있는 한국의 베란다와 달리, 터키는 아파트든 빌라든 대부분의 집에 탁 트인 발코니가 있다. 한국 베란다는 가끔 들리는 부수적인 공간이다. 식물이 자라거나 빨래가 걸려 있는 곳. 식구 중 한 명이 까먹고 휴대폰을 놓고 나가면 창문을 열고 식구를 불러 세우는 이벤트 정도가 드물게 일어나는 곳이다. 터키에서는 집집마다 발코니에 테이블과 의자를 놓고 그곳에서 식사와 티타임을 즐긴다.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는 하루에도 여러 번 발코니에서 시간을 보낸다.



처음 터키에 온 날, 밤 10시가 다 되어 도착한 나와 남자친구를 위해 남자친구네 부모님께서 터키식 물만두인 만트를 준비해 주셨다. 발코니에 있는 테이블에 보자기가 깔리고 만트와 과일, 홍차가 차려졌다. 제법 시원해진 초가을의 밤바람을 맞으며 터키식 발코니 식사를 즐기니 여행의 여독과 낯선 곳에 대한 긴장이 풀리며 마음이 나른해졌다. 그때는 발코니에서의 식사가 환영의 의미를 담은 특별한 이벤트인 줄로만 알았으나, 다음날 아침에도 어김없이 발코니 테이블에 아침 식사가 차려졌다. 부족하지도, 그렇다고 과하지도 않은 정도로 내리쬐는 햇살을 받으며 빵, 올리브, 치즈, 신선한 야채 등을 차려놓고 아침을 먹었다. 터키식 아침 식사에 빠질 수 없는 홍차를 마시며 밖을 바라보니 발코니에 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 이미 터키의 일상에 녹아든 느낌이 들었다.



바쁜 현대인들은 아침을 챙겨 먹기 힘들다고 하지만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아침의 중요성을 배웠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어야 한다, 아침을 먹어야 하루 종일 머리가 잘 돌아간다 등 공부로 지친 학생이건 일에 치이는 직장인이건 모두 아침밥을 먹어야 한다는 교훈을 들어왔다. 오죽했으면 옛날 TV 예능 중 아침을 잘 챙겨 먹지 못하는 학생에게 아침을 만들어서 배달해주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꾸준한 교육의 영향이었을까? 나는 아침을 든든하게 먹는 사람들은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부족한 잠을 쪼개서라도 아침에 밥 한 공기, 국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며, 아침밥의 힘으로 하루를 더 잘 살아낼 의지, 밥심을 다지는 사람, 그게 나였다.


아침에 무엇을 먹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빵 한 조각에 커피 한잔의 조촐한 식사든 아침인지 저녁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한 상 가득 차린 푸짐한 식사든 상관없다. 가족들과 또는 파트너와 함께 아침을 먹는 행위 자체가 우리가 같이 산다는 것을 느끼게 하고, 오늘 하루를 잘 보내자는 화이팅의 의식이었다.



터키의 발코니가 여기에 함께라는 의미를 더 돈독히 해준다. 출근 전 바쁜 아침에도 가족 구성원들이 모여서 일사불란하게 발코니에서의 아침을 준비한다. 빵을 굽고 치즈를 썰고, 다른 한 명은 차를 끓이고, 또 한 명은 발코니에서 테이블을 세팅한다. 그리고 다 같이 모여서 Afiyet Olsun(아펫 올순, 잘 먹겠습니다.)이라는 인사와 함께 밥을 먹는다. 지나가는 차 소리, 새소리,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 등 바깥의 소리가 발코니로 들어와서 사람들의 대화와 섞인다. 집 안에서 먹었다면 우리들만의 식사였을지 모를 아침 식사에 바깥소리가 섞여 모두 함께 한다.


발코니에는 여유와 따뜻함이 있다. 아침에는 다 같이 아침 식사를, 오후에는 몇몇 이서 티타임을, 저녁에는 혼자 노트북을 들고 글 쓰다가 맥주 한잔을 즐긴다. 발코니에서 벌어지는 일상들이 추억으로 저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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